[양화랑_이야기(10)] LA에서 즐기는 주말 ‘Chill Time’

beLocal 승인 2020.08.26 09:00 | 최종 수정 2020.08.26 18:05 의견 0

400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 LA. 출퇴근길 러시아워로 유명한 LA 빌딩숲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LA 속 특별한 로컬을 찾으려다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기가 애매했다. 오기 전에 정해둔 굵직한 일정을 제외하고는 즉흥적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2019 LA BEER FEST (양화랑 제공)

◇저녁 6시에 마치는 맥주축제

<2019 LA BEER FEST>가 열리는 곳은 LA 다운타운 인근이었는데, 높은 빌딩숲 사이로 많은 인파와 함께 맥주를 즐기는 게 매력적이었다. 입장 후 받은 테이스팅 잔을 가지고 마음에 내키는 맥주 부스에 가서 자유롭게 맥주나 음료를 즐기면 되는데, 사전 조사 때 봤던 신생 브루어리와 사이더 브랜드도 보였다. 미국 서부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온 브루어리까지 80여개 업체가 참여하다보니 어느 부스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일단 한국에서 맛보기 힘든 브루어리부터 찾아 나섰다. 줄을 기다리는 동안 한 쪽에선 락밴드 공연이 진행되고 다른 한 쪽에선 힙합DJ 파티가 진행되는데 축제 그 자체였다. 술을 마시는 축제다보니 시비가 붙거나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일은 없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다들 맛과 분위기를 즐기되 선을 지키는 분위기였다.

어느덧 마감시간인 오후 6시가 다 되어갔고 행사가 끝날 쯤엔 질서정연하게 부스가 정리되고 행사가 종료되었다. 사실 한국이면 이제 해가 지고 본격적으로 즐길 시간인데, 다들 적당히 즐길 만큼만 즐기자는 분위기에 칼같이 마감하는 것이 신기했다. 현지 지인말로는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하는 건 본인 자유지만, 그로인한 행동의 책임은 철저히 지는 것이 미국의 문화라고 했다. 힙한 로컬브루어리만큼 매너를 갖춘 힙한 사람들의 자세도 인상적이었다.

실버레이크에서 유명한 피자 푸드트럭 (양화랑 제공)

◇숙소 앞에서 만난 로컬 명물

여행을 하다보면 항상 숙박이 고민이다. 숙박비와 동선을 고려하면 다운타운 주변이 가장 효율적이지만, 개성 있거나 호스트와 대면할 수 있는 숙박을 찾기는 힘들다. 그래서 중심가 다운타운 인근보다는 숙소 주변의 로컬을 즐길 수 있는 동네를 찾았는데 바로 실버레이크(Silver Lake)였다. 포브스(Forbes)에서 미국에서 가장 힙한 동네로 선정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힙스터들이 즐기는 인디문화, 카페, 갤러리 등 거리에 개성 강한 공간이 가득한 동네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힙하게 느낀 곳은 로컬 주류판매점(liquor store) 주차장에서 파는 피자 푸드트럭이었다. LA도심을 누비고 지친 상태로 숙소에 돌아가는데 낮에는 없던 푸드트럭 뒤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마침 저녁 고민을 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줄을 서고 피자를 주문했다. 알고 보니 동네에선 유명한 명물이었는데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팬들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엘레오도로 로페즈(Eleodoro Lopez)씨는 13년간 피자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화덕피자 아이템으로 푸드트럭을 시작했고 주류판매점 주인이 주차장에서 파는 걸 허락해 매주 한두 번씩 주차장에서 영업을 한다고 한다.

합리적인 가격에 토핑도 1~2달러면 가능하니, 다들 한 손에는 피자 한 판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바로 옆 주류판매점에서 산 맥주를 들고 서서먹는 이색적인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매주 한 번씩 주차장에서 즐기는 피자는 주민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고, Lopez씨는 추가 수입을 만들 수 있으니 그야말로 서로 윈윈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로컬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오는 일련의 불면함이 없는 담백한 로컬의 모습 말이다.

푸드트럭에서 즐기는 피자 (Eleodoro Lopez 인스타그램)

☞로컬 주류판매점(liquor store) 주차장에서 파는 푸드트럭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elios.wood.fire.pizza/

 

◇LA를 떠나기 전 꼭 해야 하는 한 가지

샌디에고로 가기 전 우리의 마지막 LA목적지는 몽키쉬브루어리에 가는 것이었다. 실은 우리가 맥주를 좋아한다고 해도 즐기는 정도기에 유명 브루어리가 어딘지, 요즘 핫한 곳은 어딘지 빠삭하진 않다.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했는데 여행을 떠나기 몇 일 전, 한줄기 빛과 같았던 승하님과 만날 수 있었다! 승하님은 <와일드웨이브>라는 부산 로컬브루어리에서 브랜딩을 맡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자전거로 미 서부를 여행하며 브루어리투어를 하기도 했기에 추천을 받기에는 적임자였다. 직접 경험하고 느낀 브루어리 리스트를 빼곡히 채워 넣은 종이를 내어주며, “여긴 요즘 핫한 곳인데, 너무 마케팅을 잘 하는 곳이에요!” 라고 하셔서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규모 브루어리도 많고 개성이 넘치는 곳도 많은데, 몽키쉬브루어리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브루어리는 아직 오픈 전이었다. 삐까번쩍한 시내도 아니었고, 주변엔 웬 공장이나 사무실건물만 늘어져 있어서 여기에 브루어리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재차 확인을 했다.

하지만 오픈시간에 맞춰 몇 대의 차가 주차장을 매우기 시작했다. 어디서 모여든 건지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매장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고객은 아이와 함께 온 젊은 아빠였다. 6살짜리 딸과 함께 왔는데, 한 손에는 어린 아들을 안고 한 손에는 맥주 테이크아웃통인 그라울러를 들고 들어왔다. 테이크아웃하는 줄 알았더니, 맥주를 주문하고 매장에 자리를 잡았다. 조그만 아들, 딸은 일상이라는 듯 바에 준비된 안주과자와 음료를 먹고, 아빠는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귀여워보였다.

우리나라였다면 애들을 대낮부터 펍에 데리고 와서 술을 마시는 모습이 마냥 좋게 보이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왜 멋있어 보이는 건지? 아이들이 벌써 아빠의 시간과 취향을 존중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아이들은 선택권이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은 미식축구 경기를 보며 한 두어 잔 맥주를 마시고 떠났다.

몽키쉬 브루어리 (양화랑 제공)

이 곳이 우리에게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는 여럿인데, 우선 맥주가 말할 것 없이 신선하고 독특하며 맛있었다. 맥주를 서브해 주는 분은 낯선 우리에게 친절하게 우리의 취향을 물어봐주었고, 맛 볼 수 있게 조금씩 따라주며 맥주를 선택할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물론 한국에도 이런 곳이 많지만, 서비스의 깊이가 정말 다르다고 느꼈다. 그 짧지 않은 망설이는 시간을 가만히 기다려 준 다른 고객들의 배려도 마찬가지다.

크나큰 맥주탱크가 가득한 생산라인과 매장을 마치 하나의 공간처럼 구성한 것도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화려한 가구나 인테리어 없이 무심한 공간 속을 로컬 단골고객들이 채웠는데, 주말 점심시간의 여유로움과 활기찬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고객 연령대도 다양했는데 모두가 이질감 없이 맥주를 즐기기고 있었다. 나른한 오후에 한두 잔의 맥주를 즐기며 편하게 오갈 수 있는 단골 맥주집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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