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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혁주
  • 지난 특집
  • 입력 2020.08.23 21:15
  • 수정 2020.08.31 18:41

[8월특집(1)] 중간계 인물이라 발견했던 로컬 콘텐츠 - 스몰데이즈 설재우 대표

[비로컬 팟캐스트-28회 2부] 로컬 콘텐츠: 스몰데이트 설재우 대표

8월 특집은 로컬 콘텐츠입니다. 서울의 서촌 콘텐츠로 도보여행으로 즐기는 서촌 도슨트 투어를 만들고, 복합문화공간 별안간, 콤콤오락실로 잘 알려진 스몰데이즈 설재우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설재우 대표가 로컬 콘텐츠에 집중하고 만들어오게 된 과정과 에피소드들을 비로컬 청취자 여러분께 최초 공개합니다.

◎스몰데이즈 설재우 대표(이하 ‘설’): 저는 운이 좋게 서촌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잖아요. 또 중간자 입장에서 서촌을 떠난 사람도 아니고 토박이도 아니고요. 토박이라고 하면 대부분 30년을 한 세대로 봐서 50년 이상이 되어야 토박이라는 자격을 받을 수 있더라고요. 저희 아버지는 서촌 사람이 아니라 결혼해서 삶 때문에 이사를 오신 거고... 그래서 동네 분들 사이에서는 토박이가 아닌 거죠. 근데 또 제가 책을 쓸 때는 외지인 분들이 조금씩 들어올 때라 저는 중간계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장점이자 단점, 특징이자 한계였던 것 같아요. 

◆비로컬 김혁주 발행인(이하 ‘김’): 저희가 다른 로컬에 계신 분들 만났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누군가 시도하기 전에는 중요하게 생각을 안 하다가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면 약간의 상실감을 느끼시더라고요. 

◎설: 그리고 그런 것에 이해도가 있었으면 다룰 수 있는 어투라든지 방향이 있었을 텐데, 너무 초창기에 관점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주목을 받을만한 일을 하다 보니 소외감이라든지, 싫어하는 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비로컬 윤준식 편집장(이하 ‘윤’): 사실 제가 선배들과 창업했던 곳이 그 동네에요. 종로구 누상동, 누하동 그 쪽 길이었거든요.

◎설: 저희 집이 누상동인데...

◇윤: 그러시군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신라명과인가가 있었는데 거기 2층인가 3층인가에 반폐업 상태인 보습학원 강의실 두 개를 빌려 사무실로 썼었거든요. 그 때는 서촌이 주목받기 전이었잖아요. 그래서 그 동네에 그렇게 좋은 기억은 없어요. 

한 번은 동네에 불이 났는데 소방차가 아니라 갑자기 잠바를 걸치고 무전기 든 아저씨 네댓 명이 오더니 “이상 없음, 상황 종료!”하고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불이 크지 않아서 청와대에 보고할 일이 없다고요... 그래서 당시에 여기 감시당하는 무서운 동네라고 서촌에서 가장 안 좋았던 기억입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 포스터.  청와대와 인접한 서촌 골목에선 일상적이지 않은 해프닝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설: 비일비재한 일이었죠. 저는 그런 걸 경험했으면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렇게 일상적이지 않은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요. 우연히 세계를 다니고 나이가 들면서 동네의 특이함을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아쉬울 정도죠. 그 때의 재미있는 것들을 더 많이 기억해내고 싶고, “그 때 했으면 더 남길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요. 

제가 빈티지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런 물건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이 되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마다 찰칵찰칵 하는 전화 있었잖아요. 그 당시에 그걸 예쁘게 보고 남겨둬야겠다 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당시에는 되게 평범했던 것들인데 저게 빈티지가 될 걸 어떻게 알았을까, 가치 있다는 걸 당시에 어떻게 알았을까 싶어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현재의 소중함을 남기는 것과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시각이라고 생각했어요. 방금 편집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비일상적인 일들이 청와대 영향으로 유난히 많은 동네였거든요. 그걸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쉬운 부분이에요.

◇윤: 서촌에서 2대째 살고 있는 분들이나 6.25 이후에 정착해서 살고 계신 토박이들은 되게 살갑게 지내는데, 저는 외부인이잖아요? 예의바르게 대해주시기는 한데 왠지 서운하더라고요. “총각, 밥은 먹었어?” 이런 게 없는 거죠. 

◆김: 요즘 서촌은 어떤가요?

◎설: 뭘 할수록 제가 말하는 서촌이 전부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걸 더 느껴요. 세상 돌아가는 판이 여러 가지가 있고 제 또래 말고도 구성원도 많고요. 선거철이 되면 되게 다양한 분들이 살고 계셨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동네가 돌아가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면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죠. 

모를 때는 책도 쓰고 서촌은 이렇다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제가 모르는 서촌이 훨씬 더 많다고 느껴요. 또 서촌에 점점 외지인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죠. 변화가 극심하게 시작된 게 2010년도였는데 이제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잖아요. 오랫동안 이 동네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부심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고, 지금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서 많이 안정화 되어있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윤: 요즘 서촌이 도보여행 코스로 계속 각광을 받고 재미난 가게들도 생기면서 골목길 탐방코스처럼 여겨지는 게 있어요. 조금 어려운 표현으로 ‘대상화’라고 하는데요. 주관적인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꿔서 약간 유체이탈한 것처럼 보는 거예요. 서촌이 우리가 사는 곳, 나의 이웃이나 친척이 살고 있는 곳의 개념이 아니라 관상용, 관찰하고 즐기는 형태의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설재우 대표님께서 말씀하시는 건, 대상화 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서촌과 대상화되고 있는 서촌을 묶었다는 점을 이해하면 우리가 더 쏙쏙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설: 사실 제가 되게 어려운 게,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서촌을 대상화 한 사람 중 한 명이 됐어요. 어디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옛날만큼 신나게 서촌을 설명하고 그런 게 아니라 약간 마음속에 짐과 죄가 있는 느낌인 거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자면, 토박이 중 되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게 ‘경복고 문화’거든요? 여기도 명문 고등학교들이 광화문 근처에 모여 있다가 강남 개발하면서 강남으로 옮겨놨죠. 그 중 경복 고등학교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거든요. 그래서 경복고는 동문회나 애교심이 중요한 곳이에요. 

저는 경복고 출신이 아닌데요. 동네에서 뭘 하면 경복고 몇 기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특히 동네 아저씨들이요. 저희 동네가 청-청-경이라고 청운초, 청운중, 경복고 이렇게 라인을 타야 동네에서 뭘 해도 밀어주는 카르텔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솔직하게 경복고 안 나왔다고 하면 무시도 안 해요. 그냥 하면 안 된다는 거죠. 도와주고 받쳐주는 게 안돼요. 그래서 제가 가짜로 기수를 외웠어요. 제 친구들이 경복고 나왔으니까... 너 몇 기냐고 하면 72기라고 하고 친구들 이름 몇 명 말하면 되니까요. 몇 기냐고 물어봐서 72기라고 하면 확인도 안 해요. 절차도 없고 QR코드 입장 절차도 없는 건데 “이번에 운동회 나올 거지?” 그래요. 사실 저는 경복고 출신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윤: 오늘 이렇게 커밍아웃 해서 나중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니에요?

◎설: 이거 안 들으실 거예요. 서촌 분들이 제일 관심 없는 게 서촌 이야기여서... 처음에는 서촌 사람들이 서촌에 관심 없는 것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예전에는 그런 것들에 대해 동네에 날을 세우면서 관심 없는 것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이없고 그랬는데 이런 게 동네구나 하면서 넘기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동네에 계속 살다 보니까 자꾸 무뎌지는 걸 느껴요. 예전에는 동네의 일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변하는 가게가 있으면 바로 기록하고 그랬는데 그런 게 너무 많아지고 반복되니까 처음에 날을 세웠던 감각들도 이제 너무 일상이 되어서 무뎌지더라고요. 원래 세계 여행하고 오면 그런 것들이 날이 돼서 날아오거든요. 동네가 새로운 거죠.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동네에 있는 시간이 너무 오래되다 보니까 일상이 되면서 무뎌지더라고요. 그래서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조심하고 있어요.

◇윤: 방금 말씀하신 건 중간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로컬 콘텐츠가 보였다는 거잖아요? 내가 살고 있는 로컬이 콘텐츠로 투영되기 시작했고, 정리하게 됐고, 사람들에게 콘텐츠 제공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설: 첫 번째는 제 성격인 반골 기질, 두 번째는 지역을 중간 입자에서 살 수 있었던 상황들이 좋은 배경이었던 것 같아요.
 
◆김: 보통 지역, 로컬의 이런 논의에서 자주 나오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기도 해요. 예를 들면 우리 지역이 발전하려면 젊고 괴짜이고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사람인데 보통 이런 사람들은 배척 받잖아요. 우리가 중요한 자원을 잃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요 근래 많이 나오는데 서촌도 그런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설: 그렇죠. 다른 지역에서도 그런 분들이 저같이 힘들어 하지 않으시면 좋겠고요. 특히 소호, 속초 이야기 들어보면 토박이 되고 싶은 외지인들이 겪는 아픔이 저뿐 아니라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도 자원 중 하나인데 싶더라고요. 

◆김: 로컬 콘텐츠라는 화두도 순수보다 새로운 시각, 중간에 끼인 사람들이 새로운 일상에 평범함을 콘텐츠화 시키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설: 가끔 그런 분들 뵈면 그런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상처를 얻고 딱지 앉아서 웃으며 가짜 기수를 말할 수 있는 시기까지 온 것처럼, 그 분들도 그런 시기를 겪고 넘길 수 있도록 이야기 해드리고 싶어요. 상처 받아서 가시 돋으면 굉장히 위험해지거든요.

<마이리얼트립>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서촌공정여행 장면  (출처: 마이리얼트립  https://www.myrealtrip.com/offers/225)


◇윤: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도슨트 투어를 우리 지역이나 로컬에서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막상 나는 살고 있어서 무뎌지는 평범한 동네에서 도슨트 투어를 하고자 하면 어색함도 있을 거고 나는 동네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참여하는 분들은 “이게 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균형을 어떻게 맞춰 나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설: 일단 도슨트 프로그램이라는 게 하나의 결과물처럼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저는 지역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2011년도부터 <마이리얼트립>이라는 사이트에 제 서촌여행 상품을 만들어서 올려놨어요. 벌서 9년이 흘렀는데, 그 때와 지금 서촌 투어는 똑같지 않아요.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고 어떤 건 삭제되고 그러는 거죠. 

저는 지역에서의 도슨트 투어는 하나의 지역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결과물을 만들어서 투어를 돌리자는 접근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역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접근은 꼭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도슨트 투어를 하는데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지역을 통해서 내가 하는 게 내가 대단하고 잘나서 하는 게 아니라 나도 알아가는 사람 중 하나라는 관점으로 하는 거죠. 미술관의 전시물을 설명하는 게 아니잖아요.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보여주려고 하는 거기 때문에 섬세한 접근과 체계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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