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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혁주
  • 지난 특집
  • 입력 2020.08.30 17:30
  • 수정 2020.09.02 12:44

[8월특집(3)] 거친 영도만의 매력에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다 - 무명일기 오재민, 김미연

[비로컬 팟캐스트-30회] 2/3 로컬 콘텐츠: 무명일기 오재민, 김미연

8월 특집은 로컬 콘텐츠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부산 영도의 <무명일기>에게 주목해 봅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재생하기 위해 부산의 로컬푸드인 충무김밥을 리브랜딩하고, 푸드트럭을 도입해 지역축제에 참여하고 함께 기획하는 과정에서 '라이프스타일 컨시어지'라는 컨셉을 도출합니다. 지금은 영도 입구의 낡은 공장을 업사이클링한 공간에서 로컬 콘텐츠 실험을 이어가고 있는 로컬크리에이터의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비로컬 윤준식 편집장(이하 ‘윤’): 2014년도에 창업하시고 2015년에 본격적으로 <충무로> 론칭을 하시고 2016~2017년에 푸드트럭 비즈니스를 하셨거든요. 그럼 지금의 <무명일기>는 2017년 이후에 자리 잡게 된 건가요?

◎키친파이브 오재민 대표(이하 ‘오’): 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도가 가지고 있는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거친 매력들이 있어요. <알티비피 얼라이언스> 김철우 대표님께서 많이 하시는 표현인데요. 에피소드를 하나 말씀 드리면 2017년쯤 저희 공간 밖에 부두길이라고 하나요? 물양장이라고 하는데요. 거기서 다른 지역에 있는 마켓을 할 때 김철우 대표님도 참여를 하셔서 그 때 저랑 나눈 이야기가 있어요. 그 때부터 저는 저 나름대로 준비를 했고 김철우 대표님은 시스템을 만들어 가면서 준비하고 계셨고요. 저는 이런 거 하자고 하면 안 된다고 반대할 게 뻔하니까 혼자 장소를 많이 보러 다녔어요.

●키친파이브 김미연 실장(이하 ‘김’): 사진이랑 영상 보여주시면서 여기 어떠냐고 하시는데 멘붕이 왔어요. 근데 전에 그런 말을 했었거든요. 운영하는 매장이랑 사무실이랑 푸드트럭이랑 창고를 합쳐서 큰 공간에서 했으면 좋겠다고요. 근데 갑자기 ‘짠’ 하고 공간을 데려올 줄은 몰랐죠. 그래서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창고 한 공간에 정원을 만들어주시겠다고 해서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윤: 그럼 2017년 정도부터 장소를 물색하신 거고, 실제 <무명일기>가 입주하게 된 건 언제쯤인가요?

◎오: 저희가 2018년 5월쯤 그 공간을 발견했어요. 이제 2년 2개월 차에 접어들었고요. 그 공간을 보고 건물주하고 이런 걸 하고 싶다 협의를 했는데 이해를 못하시더라고요. 그냥 공장으로 쓸 사람만 임대를 하시겠다고 해서 한두 달 간 만나서 설득을 했어요.

저녁노을이 내려앉은 영도 앞바다  (출처: <무명일기> 인스타그램)

◇윤: 장소는 영도 안에서만 찾으신 건가요?

◎오: 아니요. 실제 창고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잖아요. 공장과 도시재생이라는 주제로 부산에 제일 먼저 생겨난 모델이 고려제강이 만든 <F1963>이라는 공간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내가 해보고 싶은 모델이 이런 건데’라고 생각하며 자랐고요. 부산에 공단 지역이 몇 개 있어요. 신평, 사상, 금정구 등이 있는데 지금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스팟이 많이 생겼거든요. 그 중에서 영도는 공장 바로 앞에 바다를 끼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이 공간이 바다랑 가장 가까운 곳이고, 부산과 바다가 가지고 있는 컬러가 너무 명확해서 이 공간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김: 처음에는 그냥 신기하고 낡은 느낌인데 컬러풀한 색감이 좋아서 사진 찍고 정원이 생긴다는 기대감과 큰 공간이 생긴다는 거에 생각 없이 마냥 좋아했어요. 힘들기 전의 서막이죠.

◇윤: 건물주하고 두 달 동안 협상을 하셨다고요?

◎오: 뭐할 거냐고 물어보셔서 공연도 하고 제품도 만들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된 공간으로 만들거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월세 제대로 내겠나?”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두 달 정도 설득하고 협의한 거죠. 원래는 이 공간이 보세 창고들이었고 이후에 선박 수리를 하고 그러다가 마침 6개월 정도 비어있던 곳이에요. 공장들은 기본적인 공장 설비가 다 돼 있거든요. 제가 이 걸 다 없앨 거라고 상상하셨나 봐요. 그래서 반대하고 안 된다고 하셨는데 제가 푸드트럭처럼 이 공간에 꽂힌 상황이었어요. 건물 보고 1분 만에 어떻게 해야 겠다 플랜까지 떠오른 상황이었거든요. 

◇윤: 그 1분 동안 만든 시나리오 때문에 고생이라는 양념을 치게 된 거군요.

철거부터 도색까지 공간조성을 직접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출처: <무명일기> 인스타그램)

●김: 먼지가 장난 아니었어요. 만드는 과정 기록하는 걸 좋아해서 철거할 쯤 영상기록을 하려고 갔었는데 그 때부터 막막해지기 시작한 거예요. 

◇윤: 거기가 층고도 높고 평수도 꽤 되잖아요? 복층 공간인데 높이는 3층 정도 높이죠. 편의상 가볍게 계산해서 1층 100평, 2층 자투리 공간 50평정도 하면 150평 공간인데, 그 면적만큼 원래 공장에서 쓰던 다양한 기자재가 있던 걸 철거한 거네요? 저는 상상을 하니 얼굴이 갈수록 하얘지거든요? 두 분은 담담하시네요.

●김: 지금은 담담한데,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어요. 일하면서 매일 울고 그랬거든요. 제가 알레르기 비염이 심해서 먼지를 마시면 안 되는데 대표님 입장에서는 이 공간에 애정을 좀 더 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러서,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도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먼지를 쓸어내라고 해서 처음에 다른 직원분이랑 하는데, 땀 잘 안 흘리는 체질인데 살면서 처음으로 땀을 제일 많이 흘렸어요. 여기서 쓰러지면 다신 안 시키겠지 이런 생각이 들만큼이어서 사람 시켜야 될 것 같다고 그랬죠.

◎오: 청소랑 철거작업이랑 페인트칠을 처음에 저희가 시작은 했는데 저희가 할 수 없는 범위더라고요. 청소, 철거, 도색, 목작업 이런 걸 직접 하면서 중간에 정말 전문가들을 불러서 이 부분만 마무리 해달라는 식으로 했어요. 두 달 만에 할 줄 알았어요. 2018년 8월 되면 문 열어서 사람들이랑 공간을 즐기자고 했는데, 12월까지 삽질하고 있었습니다.

공사 중인 <무명일기> 공간. 영도 부두가 보인다.  (출처: <무명일기> 인스타그램)

◇윤: 아니, 그럼 그동안 매출은요?

◎오: 기존 매장을 담당하는 F&B 직원 분들이 스스로 운영을 했어요. 지금의 <무명일기> 공간 준비를 할 수 있는 것도 직원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고요. 

◇윤: 고생담이 담기기는 했지만 공간을 얻고 형성하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린 셈이잖아요. 일반 비즈니스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게 천하에 어리석은 게 있나” 싶거든요. 인테리어 업자들에게 맡기면 한두 달이면 끝나요. 그런데 로컬크리에이터 분들은 자기 취향이랄까? 기간이 오래 걸려도 자기가 손을 안대면 용납이 안 되는 거예요. 용접을 배워서 철공을 자기가 직접 만들어 세워놓는 경우도 있어요. 오픈 시기가 늦어지더라도 나의 세계관이 담긴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한 거예요. 이게 사실 서울이나 대도시처럼 임대료가 비싼 곳은 엄두도 못내는 방식이에요. 인테리어를 6개월, 8개월 한다는 건 이미 망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 거죠. 

◎오: 저희도 주변에서 걱정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준비 과정에서 많은 로컬크리에이터 분들을 만났거든요. 저도 나름대로 그 공간을 어떻게 하겠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누군가의 소개로 전국에 흩어져있는 분들이 공사 현장에 오셔서 의견을 이야기 해주시기도 했어요. 돈은 못 벌었지만 공간을 만들었던 과정도 굉장히 중요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이상한 소문도 많이 났었어요. 술집으로 소문이 나서 동네 어르신들 오셔서 술 달라고 하시고.

◇윤: 굳이 영도에 그런 공간을 만드셨어야 했나요? 영도의 거친 매력을 느끼게 된 사연이 있으실 것 같아요.

◎오: 본적이 영도입니다. 영도가 피난민들이 많이 오셨던 지역이에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도 피난민 중 한 분이셨고 저희 아버지가 나고 자라신 곳이죠. 저는 바다를 건너서 영도를 보고 자랐어요. <무명일기> 앞에 물양장이 피난민들이 텐트치고 살았던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오픈하고 나서 저희 고모가 옛날에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이북에서 내려와서 갈 데 없으니까 여기 밑에서 텐트치고 살았대요. 그런 가족 스토리가 있어서 애정은 있었죠. 영도 전설 중에 ‘고갈산 할매(*고갈산: 영도 봉래산의 별칭)’가 있어요. 욕심은 많아도 영도 사람들은 지켜주지만 영도에서 나가면 부를 다 뺏어간다는 전설이 있거든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도 영도 계시다가 나오면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다시 들어가면 주시지 않을까 했거든요. 근데 돈보다는 사람을 보내주신 것 같아요.

<무명일기> 바깥으로 내다 보이는 영도. 영도만의 거친 매력이 <무명일기>의 존재감을 한층 높여준다.  (출처: <무명일기> 페이스북)

◇윤: <무명일기> 가보면 이런 이야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예쁘고 힙하고 뭔가 이뤄질 것 같은 기대감을 주거든요. 보이지 않는 이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무명일기>가 뭐 하는 곳인지 처음 갔을 때는 몰라요. 저도 처음에는 이색카페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오: 규정을 짓고 싶지 않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카페로 알려지는 게 정말 싫었어요. 카페 서비스를 하긴 하지만, 우리는 로컬 콘텐츠를 만드는 곳이라고 알리고 싶어서 노력을 했어요. 근데 생각이 바뀐 게 안 그래도 빨리 바뀌는 우리 사회 변화를 코로나가 더 빨리 바꾸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러면 우리가 무언가를 규정지으면 안 될 것 같고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건 익숙한 공간으로 가자 싶더라고요. 카페로 이용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카페가 될 수 있고 스튜디오로 이용하고 싶은 분들은 스튜디오가 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길이 보이겠지 않나. 그런 과정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김: <무명일기>를 직역하면 ‘정해지지 않은 일상의 기록’이에요. 이중적 의미로는 ‘무명’이 천이라는 의미로 코튼 다이어리로 읽을 수 있듯이, 천으로 뭔가를 하는 브랜드라고 했는데요.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어요. 근데 오시는 분들과 같이 무형의 것이 어우러지고 일상으로 인해 조금씩 잡혀가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여기 시그니처 메뉴가 뭐고 뭘 만드는 곳이고 뭘 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카페가 메인은 아니지만 <무명일기> 브랜드로서 나아갈 거라고 말은 했는데, 정확히 말씀은 못 드렸어요.

◇윤: 카페 아니라고 하는데 식음료가 엄청 고급스러워서 “이거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사장님은 도대체 전에 뭘 하셨기에 이렇게 맛있냐”고 했더니 음식을 좀 했다고 하셔서 납득했습니다. 그 때 백향과에이드랑 흑임자케이크를 먹었는데 굉장히 놀랐거든요. 규정하고 싶고 규정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좀 더 <무명일기>를 이해할 수 있게끔 그 안에 탑재된 시스템? 시설, 설비, 콘셉트를 좀 더 구분해서 말씀해 주세요.

<무명일기>에서 다이닝 서비스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출처: <무명일기> 페이스북)

◎오: ‘의식주’라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라이프스타일이고 옛날식으로 말하면 ‘의식주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한다 정도일 것 같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들이 ‘식’의 모델들이었고 이제 의복과 관련된 생활에 쓰일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을 콘텐츠화 시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크게 나누면 공간이 있는데 저희가 공간 운영하는 회사는 아니다 보니 공간이 메인은 아니지만 저희 브랜드 색깔을 잘 담아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 중 가장 첫 번째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카페 서비스여서 카페 서비스로 시작했고요. 행사, 전시 행사 관련된 대관, 케이터링 이런 것들을 주업으로 공간을 운영하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행사를 추구해서 공연장 아닌 곳에서 공연을 하고 회의장 아닌 곳에서 회의하길 바라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공간을 많이 선호해서 문의를 하시는 것 같고요.  

●김: (고객들이) 커뮤니티 컨시어지 느낌을 주는 곳들을 많이 보세요.

◇윤: 규정하고 싶지 않은 곳에서 규정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공연인건지 모임인건지 경계가 모호한 것을 하는군요.

◎오: 그렇죠. 유료 티켓을 받고 하신 분도 있는데 저희는 대부분 오픈 공연을 해서 누구나 공간에 와서 어울리기를 바란다고 말씀 드렸고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 왔어요. 차츰 경계가 생기면서 규정도 생기고 명확해지고 있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오픈 당시 처음 교류했던 분들도 “이런 것도 하네?” 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있는 것 같아요. 

●김: 나중을 계속 기대하시더라고요. “다음에는 어떻게 변할까? 또 와야지!” 그러면서요.

규정하고 싶지 않은 곳에서 규정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 <무명일기>가 '로컬 콘텐츠 컨시어지 서비스'를 꿈꾸게 된 이유다.   (출처: <무명일기> 페이스북)

 ◇윤: 그럼 <무명일기>를 찾는 고객이라고 해야 할까요? 방문객들한테 어떻게 인상지어지고 싶으신 건지?

◎오: 저희는 어떤 상품에 초점을 두고 싶지 않아요. 저희 식대로 회사에서 하는 이야기를 표현해보면 ‘로컬 콘텐츠 컨시어지 서비스’를 하고 싶습니다. 제품으로 기억되기 보다는 여기서 뭘 했다고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오늘 무명일기에서 누구를 만났다” 혹은 “오늘 무명일기 갔는데 좋았다.” 이렇게요. 어려울 수 있는데 우리가 음악 들으면 예전에 이 음악 자주 듣던 공간과 시간이 기억되잖아요. 공간도 그렇게 기억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고요. 그들의 인생이 주체가 되는 거죠. 

●김: 찾아주시는 분들과 같이 일상을 살면서 같이 시간이 지나길 바라는 브랜드에요. 감성적으로는 “나와 당신의 오늘에 스며들고 싶습니다”랄까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저희 공간이나 브랜드를 접하고 나서 기록도 하고 찍기도 하면서 조금 특별한 하루를 보내시기 바라는 마음이에요. 추억과 기억이 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윤: 정말 심오한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제 식으로 표현하면 <무명일기>와 <무명일기>를 오가는 시민들이 자기만의 기억이나 기록을 남기는 것 같아요. 일종의 시민권처럼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내가 어느 지역 사람인데 그 지역에서 어린 시절 뭐 먹었다” 하는 것처럼, “나 무명일기 시민인데 거기서 맛있는 커피 마셨어. 공연하고 전시했어” 이런 식으로 삶의 일부가 되어지는? 제각각의 삶이 모자이크처럼 모여지는 세계관인 것처럼 보이는데,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오: 앞으로 새로운 게 더 나올 것 같아요. 기존에 있던 건 아닌데 익숙한데 새로 생긴 것. 이런 애매모호한 사회 현상들이 브랜드에 탄생될 수 있을 거고 서비스가 변화는 것을 반복적으로 겪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중요한 건 브랜드든 콘텐츠를 지키려는 로컬크리에이터든 “나 죽을 때까지 이거 간직하고 있을 테니까 언제든 필요하면 나한테 오세요”라는 식으로 된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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