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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리칼럼(24)] 잘 놀았니?

멘토리 권기효 대표의 로컬 청소년 이야기

제가 하는 일의 가장 큰 낙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보람만 있지는 않아요. 뼈저린 후회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아쉬움도 있죠. 자기반성이 주를 이루고 보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는 보람보다 감사가 더 크죠. 한 아이에게 부모님이나 친구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이런저런 푸념도 하고 연락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남’이라는 존재의 어른이 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일이죠.

“대학가는 것만 물어보고 제 기분은 아무도 묻지 않아요.”

지금 이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의 마음을 “이해한다. 공감한다.” 하는 어른들은 모두 허세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도 ‘고3’ 하면 ‘애들 대학 가는데 지장 없으려나’라는 걱정이 가장 먼저 떠올랐으니까요. 1년의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올해의 아이들은 어떤 기분일까요?

이 카톡을 받고 하던 일을 멈추고 고민했습니다. 진지하게 고민을 받아줘야 할까? 이해한다고 하면서 다독여줄까? 나도 힘들다고 하면서 공감한다고 할까? 어떤 기분이냐고 물어볼까? 아니면 공부가 잘 안되는지 물어보고 조언해야할까? 온통 아저씨 같은 생각만 했죠.

(멘토리 제공)

“오늘은 잘 놀았니?”

떠올려보면 제가 아이들에게 항상 하는 안부는 ‘오늘’을 ‘잘’ 놀았는지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대답은 제 역할을 뛰어넘는 일 같았어요. 지쳤을 땐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웃을 수 있는 어른도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는데 잘 전달되었을까요.

저는 만나는 청소년들을 한 명씩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9년간 2000명의 청소년들을 만났는데 이렇게 카톡을 할 만큼 친한 아이들은 30명 정도입니다. 이 친구들에 대한 건 다 기억해요. 어떤 표정으로 날 바라봤는지, 처음 내게 어떻게 말을 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이 어떤 데이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장례식에 와줄 수 있는 녀석들의 목록인건 맞아요.

아이들에게 누구보다 소중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날들이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네요. 아이들의 1년을 누가 보상해 줄까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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