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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혁주
  • 칼럼
  • 입력 2019.09.25 03:28
  • 수정 2022.09.05 16:03

왜 지금 로컬크리에이터인가?

비로컬 김혁주, "흔히 생각하는 '지역'의 개념과는 다르다!"

어느샌가 ‘로컬크리에이터’란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아프리카TV나 유튜브 같은 1인미디어의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크리에이터’라는 표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고, 그 덕에 ‘로컬크리에이터’라는 신조어가 낯설지 않게 여겨진 듯하다. 그러나 ‘로컬크리에이터’가 뭔지를 물어보면 정작 이 명칭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로컬크리에이터와 함께 화제에 오른 말이 있다. 바로 ‘로컬콘텐츠’이다. 로컬콘텐츠는 로컬크리에이터보다 좀더 의미를 유추하기 쉽다. ‘콘텐츠’라는 표현이 나온 시기는 1990년대로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정확한 단어의 뜻을 말해 주고,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단어의 의미가 어떻게 재인식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콘텐츠’라는 개념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익숙해진 지 오래다.

그런 이유로 다소 진부한 작업이 될지 모르지만 ‘로컬크리에이터’라는 말의 의미부터 우선 학습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2019 로컬크리에이터 페스타  ( 사진 = 비로컬 )
2019 로컬크리에이터 페스타 ( 사진 = 비로컬 )

◇로컬은 지역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로컬크리에이터’ 분야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를 진행한 분은 <골목길 자본론>의 저자로 잘 알려진 모종린 교수다. 먼저 모종린 교수가 정리한 내용을 토대로 ‘로컬크리에이터’의 개념을 살펴본다면, ‘로컬크리에이터’란 지역에서 활동하는 창의적 소상공인을 말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골목 상권 등 지역 시장에서 지역 자원, 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 소상공인이다.

모종린 교수의 정의는 지금까지 등장한 로컬 크리에이터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고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매우 짧고 축약된 정의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로컬크리에이터 유형까지 포괄한다. 그러나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생각과 행태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이 생산한 로컬콘텐츠의 일부분만을 대하게 된다면 모종린 교수의 정의를 오해할 수 있다. 모 교수가 정의한 내용 중 ‘지역’과 ‘소상공인’에 초점을 맞추고 로컬크리에이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로컬크리에이터라 표현할 때 굳이 꼭 집어서 ‘로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지역’ ‘골목’ 등 표현할 수 있는 기존 언어가 다양하게 있는데도 ‘로컬’이라는 단어를 넣어 낯설게 보길 바라는지 말이다. 또한 ‘로컬크리에이터’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크리에이터’보다는 ‘로컬’의 의미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로컬이 지닌 문화적 코드

‘로컬’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제2의 고향’이란 말이다. 원래 살던 고향이나 본적지가 뚜렷하게 있지만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어떤 도시나 지역에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고향에서의 삶보다 더 오랜 시간 머물게 되며 익숙해지거나 문화적, 정서적 코드가 맞아 고향보다 더 고향 같은 장소를 ‘제2의 고향’이라 한다. ‘로컬’도 그런 개념에서 출발한다.

이런 예를 들어 보겠다. 취미가 서핑인, 갑갑한 도시 생활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은 바닷가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이다. 서핑을 즐기려고 전국 해변을 다 돌아다녀 봤는데 그중에서도 강릉 해변이 가장 마음에 들고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기에도 적합해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강릉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로컬’은 서울도 아니고 강릉도 아니다. 해변과 서핑이 함께하는 공간이 그의 ‘로컬’이다.

한편, 해변을 사랑하고 서핑이 좋아 이곳으로 내려왔지만 생활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경제적인 활동을 위해 뭔가 수단을 찾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현지에서의 생활을 위해서는 살 집이 있어야 하는데, 이왕 집을 구하는 김에 방이 많고 넓은 집을 구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운영을 계속하다 보니 이 게스트하우스는 숙박이 아닌 다른 의미에서 성황을 이루게 된다. 게스트하우스의 운영자가 자신의 취미를 살려 서핑이나 해변에서 즐길 만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 결과, 숙박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닌 해변에서의 놀이나 파티, 아웃도어 활동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이 게스트하우스를 찾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이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사람들의 로컬 개념은 무엇일까? 흔히 강릉 인근의 해변이 서핑하기 좋은 장소로 평가되고 있기에 이들의 로컬이 ‘강릉 해변’일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이들이 여기에 온 것은 게스트하우스 운영자가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즉 ‘로컬콘텐츠’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바꿔말해 ‘강릉’이나 ‘해변’, ‘서핑’이 교집합 때문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 운영자가 풀어낸 로컬의 의미가 담긴 콘텐츠에 이끌려 오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사례를 재구성해 ‘로컬’, ‘로컬콘텐츠’, ‘로컬 리에이터’의 의미를 짚어 보았다. 이 맥락 속에서 알 수 있었던 로컬크리에이터들의 특징은 노마드(nomad) 기질이 있다는 점이다. 머무는 지역에 종속되어 지역이 제공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아 지역을 옮겨 간다. 즉 그들에게 ‘로컬’은 단순히 지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다 내재적인 동기, 이를테면 정서나 가치관, 편리성 등의 조건에 맞춰진 장소가 ‘로컬’의 의미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로컬콘텐츠도 생산되어지는 것이다.

◇로컬콘텐츠의 이해

그간 필자가 살펴본 바 로컬콘텐츠는 ①‘로컬’에 대한 이해와 해석 ②지역에서 조달할 수 있는 제품, 서비스와 같은 비즈니스 아이템 ③지역 또는 지역 내부 네트워킹이라는 세 가지 요인으로 인해 매우 다양한 유형으로, 다층적으로 생산된다.

이는 로컬크리에이터의 성공사례로 가장 잘 알려진 ‘어반플레이’를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어반플레이는 융복합기술을 활용해 도시 속 사회적 이슈를 해결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도시를 실현하는 기업이다. 지역 내 유·무형 콘텐츠를 수집하고 가공해 도시 속 이슈를 새로운 방식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 지역 프로젝트, 공간, 멀티미디어, 출판물과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어반플레이가 포커싱한 지역은 마포구 연남동과 서대문구 연희동이다. 기존의 홍대권과 신촌권 사이에 끼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행정 구역상으로도 분리된 지역이지만 어반플레이는 이 지역을 재해석한 로컬콘텐츠를 통해 이곳을 새로운 지역으로 묶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역의 특수성과 문화자산을 바탕으로 한 ‘연희, 걷다’ ‘연남위크’와 같은 체험형 프로그램, 전국의 로컬을 다룬 ‘아는동네’ 매거진, 로컬크리에이터들을 위한 라운지인 ‘연남장’ 등이 그들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로컬콘텐츠다. 어반플레이는 ‘연남장’을 비롯 3군데의 로컬 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연말까지 20군데로 늘린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어반플레이 이전에도 연남과 연희에 많은 업체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비즈니스는 ‘지역’에만 국한되었을 뿐, ‘로컬’의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이를 눈여겨본 서울산업진흥원과 네이버가 전략적인 초기 투자를 감행했고, 현재 시리즈A 투자 26억을 유치했다. 로컬크리에이터 중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은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상징성을 말할 수 있지만, 이런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로 좁은 지역, 작은 동네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면서 그 지역의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유망하게 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어반플레이는 제3자의 시각에서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어반플레이를 관광 벤처로 분류한다. 연남, 연희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새로운 형태의 도시 관광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한편, 부동산 개발 분야에서는 부동산 유휴 공간 활성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프롭테크(proptech; property+technology) 기업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 행정이나 정부 분야에서는 어반플레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도시 재생의 관점에서 볼 때 로컬크리에이터의 접근 방식은 행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비춰지고 있다. 특히 재개발과 재건축의 자원을 투입하기 어려운 구도심이나 구시가의 문제점도 ‘로컬’로 재해석되고 새롭게 투영되면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로수길과 경리단길의 성공을 이식하고자 시도했던 ‘O로수길’ ‘O리단길’의 실패에서 나온 반성이기도 하다.

◇로컬크리에이터 혹은 로컬콘텐츠로서의 출판

한편, 서점을 기반으로 한 ‘로컬크리에이터’도 등장하고 있다. 책이라는 상품은 지식과 교양, 즐거움이라는 콘텐츠를 담고 있어 정서적 친화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인구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서점이 제공하는 책과 만남이라는 콘텐츠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근길책한잔’이나 큐레이션 서점 ‘지금의세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책 자체보다는 ‘로컬’과 ‘공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출판의 본질에 보다 가까운 접근은 독립잡지를 통해 나타난다. 앞서 소개한 ‘어반플레이’가 펴내고 있는 무크지 <아는동네>는 ‘로컬’을 한 군데씩 집중 조명하면서 ‘로컬크리에이터’와 ‘로컬콘텐츠’를 소개하고 있다. 얼핏 보면 관광 가이드북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로컬의 해석을 담았다.

이보다 더 로컬콘텐츠를 강조하고 있는 잡지로는 <다시, 부산>을 들 수 있다. 부산의 이야기를 담은 로컬 브랜드 큐레이션 형태의 굿즈를 제공해 최근 관심을 받고 있는 로컬 매거진이다. 로컬콘텐츠로서의 <다시, 부산>의 특징은 텀블벅 모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잡지 부록 형식이 된다고 볼 수도 있는데 펀딩 형태에 따라 삼진어묵, 덕화명란, 대선소주 같은 부산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상품들이 함께 제공되기 때문이다. 즉, 이 잡지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다시, 부산>이라는 잡지를 구입하는 게 아니라 ‘부산’이라는 ‘로컬’과 부산의 ‘로컬콘텐츠’를 구입하게 된다는 의미다.

출판만의 사례를 들자면 통영에 소재한 ‘남해의봄날’을 꼽아볼 수 있다. <통영 예술지도>,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 <바닷마을 책방 이야기>와 같은 책들을 펴내 ‘로컬콘텐츠’로서 출판의 가능성을 보주고 있다. 하지만 ‘남해의봄날’은 ‘로컬콘텐츠’만 다루는 출판사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앞서 설명한 ‘로컬크리에이터’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로서 출판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이유는 지역에 자리잡은 작은 사업자 입장에서 출판이 매우 복잡하고 복합적인 산업으로 비춰지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출판 자체는 콘텐츠 비즈니스지만 인쇄는 제조업, 서점은 유통업이기에 이 모든 것을 알아야 뭔가 해볼 수 있다는 심리적인 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컬크리에이터’가 저자와 콘텐츠라는 출판의 핵심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점차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크라우드 펀딩과 구독경제 활성화도 자연스럽게 경제적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뒷받침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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