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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혁주
  • 지난 특집
  • 입력 2020.10.27 14:15
  • 수정 2020.11.05 10:26

[10월특집(2)] 2부: 농촌을 지키는 로컬 콘텐츠 스타트업 – 남해 <팜프라> 유지황 대표

10월의 비로컬은 ‘로컬벤처’ 특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경남 남해 두모마을에 자리잡은 <팜프라> 유지황 대표를 만나 지금의 <팜프라>가 있기까지의 이야기와 더불어 농촌을 계승하고 지키기 위해 필요한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1부: 삶의 전환을 꿈꾸는 청년들의 인프라
2부: 농촌을 지키는 로컬 콘텐츠 스타트업

◆비로컬 김혁주 발행인(이하 ‘김’): 저는 유 대표님 활동하시는 걸로 새로운 농촌, 새로운 마을을 만든다는 개념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농업 분야의 앨런머스크를 꿈꾸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팜프라 유지황 대표(이하 ‘유’): 너무 거창한데요.

◇비로컬 윤준식 편집장(이하 ‘윤’): 그럼 ‘코부기’ 집은 1,000만 원에 건설할 수 있는 건가요?

◎유: 에너지 효율을 높이다 보니까 재료비가 1,500만 원 정도가 듭니다. 인건비까지 하면 더 들죠.

◇윤: 말씀 중에 ‘파밍보이즈’ 이야기가 나왔는데, 처음에 농촌에 들어오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고 에둘러 말씀하신 게 그 활동이었군요?

◎유: 한국에는 기반 없이 시작하고 계속 하고 있는 또래 청년이 없더라고요. 다 후계농, 승계농인데 그 친구들도 힘들어 하고요. 그래서 내가 이걸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 찾다가 일본부터 시작해서 여러 나라들을 다니면서 다른 나라들은 어떤 제도가 있는지, 어떤 단체가 있는지 어떻게 시작해서 계속 하고 있는지를 보러 다닌 거죠.

◆김: 다큐를 만드신 거잖아요.

◎유: 네. 다큐 영화 만들어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도 받고 개봉도 했고요. 좀 더 감성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들도 담고 싶어서 매일 일기 썼던 걸로 책도 냈고요. 그러고 나서 ‘코부기’를 했고 2~3년 뒤에 ‘코부기’에 대한 수요가 진짜 많다고 생각해서 <팜프라> 형태로 했어요. 그 걸 3년 간 테스트 한 거죠. 이것도 팔아보고 저것도 팔아보고 공공사업도 해보고 공모전이나 용역사업도 해보고요. 그 중에 우리가 앞으로 어떤 걸 해 갈지를 정리하는 단계에요.

◆김: 로컬에서 대표님들 만나보면 항상 특이사항이 콘텐츠 스타트업 형태를 먼저 갖고 계신다는 거예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체계를 설명하기 위해 콘텐츠 작업을 굉장히 많이 하고요. 펀딩으로 만난 <팜프라>도 제가 보기에는 거의 콘텐츠 스타트업에 가까웠어요. 매거진도, 책도, 웹사이트도 상대를 매료시킬 만큼 디자인적으로도 빼어나고 콘텐츠도 튼튼하게 만드셨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거든요.

◎유: 저희는 제품 없이 브랜드가 먼저 알려졌어요. 원래는 ‘파밍보이즈’ 유지황이었고 다음에 ‘코부기’ 유지황이었고 이제는 ‘팜프라’ 유지황으로 인지도를 넣는 작업을 했죠. 이제는 제가 아니라 <팜프라>가 앞으로 나오게끔 해서 <팜프라>를 찾아오는 많은 분들이 저를 잘 모르는 분들이 많으세요. 오히려 저희 멤버 보고 오는 경우도 있고 이런 곳이 있구나 해서 오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작업을 계속 해왔고 앞으로 더 해가야죠.

◇윤: 팜프라촌에 입주하는 청년들이 농사를 지으려고만 오는 것이 아니라 <팜프라>라는 인프라를 이용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어서 온다는 것으로 정리가 되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한다고 말씀 하셨잖아요.

◎유: 그래서 농업사관학교냐는 이야기 많이 하는데 저희는 딱 질색인 말이고요. 결국 저는 교육 제도부터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 제도를 거친 한 사람으로서 제일 힘들었던 게 저는 학교가 안 맞았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저는 반항아 집단이었거든요. 교육 제도가 안 맞는 상태에서 대학을 가고 직장을 가잖아요. 너무 안 맞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회적 시선이든, 스스로든, 부모의 시선이든 그걸 잘 밟아온 친구가 직장을 가지기 전이나 혹은 직장을 가진 후에 문득 내가 원했던 삶이 이런 삶이 맞나 하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하는 거예요. 왜냐면 어느 순간에 살면서 내가 선택했던 게 없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그 중에 나는 자연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 지역에서 해보고 싶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오는 거죠. 그러면 생활비는 본인이 내고 저희가 비용이나 주거 공간 같은 것들을 지원해줘요.

여기서 생활비를 벌 수 있을 정도의 일을 만들어 보는 거죠. 저희 일을 돕거나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쉬다가 가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렇게라도 자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설계를 했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삶의 궤적이라는 프로그램인데요. 자기가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기억들을 다 적어보는 작업이에요. 내가 과거에 어떤 궤적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보고 현재에 어떤지를 보면 앞으로의 그림이 좀 그려지는 거죠. 그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사진출처: 팜프라 페이스북)

◆김: 교육 체계가 안 맞았다고 말씀하시는 게 사실은 어떤 거부활동이라기 보다 틀을 깨는 작업에 대한 내용들인 거잖아요. 사회가 나를 정의할 수 없으니까.

◇윤: 그런 것보다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이 제공하지 못하는 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어요.

◎유: 맞습니다. 심지어 저는 그걸 학교 다닐 때 알았는데, 선택지가 없잖아요.

◇윤: 예를 들면 과목이나 공간의 한계 때문에 못 하는 건데, 대표님은 감동적인게 집을 짓고 싶어서 건축사무소 찾아가서 건축에 관련된 모든 걸 다 배우잖아요.

◎유: 제가 느끼기에는 고등학교 때 해야 할 과정을 그 때 한 거죠.

◆김: 저희가 다른 팀을 만나러 녹음하러 이동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는데요. 중고등학교 때 했어야 할 일을 우리가 왜 지금 하고 있을까, 일종의 공부 과정들은 계속해서 겪어간다고 저희도 생각하는데 대부분 비슷한 내용들이 있네요.

◇윤: 스스로 교과 과정을 개발하고 후에 따라올 사람들을 위해 그걸 또 만들어 놓는다는 건 거의 조선왕조에서 하던 의궤를 만드는 사업인 거죠.

◎유: 미래세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제가 너무 그렇게 못 살아봐서 사실 그게 불평등과 불균형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제가 배우고 싶었던 것들은 자본이 없어서 선택을 못한 경우도 많고요. 만약 고등학교 때 저 정도 돈이 있었다면 저는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시장 경제 영역 안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없잖아요. 농사짓고 싶으면 나중에 농촌 가서 살면 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게 진짜 어려운 일이거든요. 솔직히 저는 너무 힘들어서 나이 들면 농사 못 짓겠어요. 그런데 지금 하고 싶은 거죠. 주변 친구들 보면 다 운동 좋아하고 그런 애들끼리 모여 있거든요. 활동적인 걸 풀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는 거예요.

◆김: 예전에 학교는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한 학교였는데 사회가 움직이는 흐름이 너무 빨라지니까 학교가 이제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유: 저희는 대안학교에서 고등학생 인턴이 오면 뭐 안 가르쳐 줘요. 그냥 같이 해요. 스스로 공부하고 잘 모르면 그 때 가르쳐주고 피드백해주고요. 저희는 약간 기록 덕후라 기록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진출처: 팜프라 페이스북)

◇윤: 그래서 제가 의궤 작업이라고 말씀 드린 건데요. 이게 용어가 의궤라니까 궤짝이나 의류라고 생각하시는데 조선왕조에서 무슨 사건이 있을 때마다 사관과 화가들을 동원해서 총천연색의 아카이빙, 지금으로 따지면 다큐죠. 이게 당시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발달한 게 대한민국이거든요. 사람들은 기록 덕후가 일본에만 있는 줄 아시는데 기록 덕후 원조는 대한민국이죠.

◆김: 조선이 콘텐츠 스타트업이었다고 선언을 하시는 거예요?

◇윤: 그렇죠. 그러니까 조선 전통 콘텐츠 스타트업으로 출발해서 농촌까지 발명한 우주적인 그런..

◎유: 사실 좀 동의를 하는 게 일본 도서를 많이 봤어요. 농촌 관련 자료를 찾을 때 한국에 자료가 없는 거예요. 특히 초창기 한 10년 전, 8년 전에는 볼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일본이 기록을 잘해요. 최근에 보면 정말 잘 해놨거든요. 그걸 보면서 첫 여행지로 농촌을 보러 일본을 간 거예요.

저희가 기록을 한다는 건 우리가 본다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가 보는 걸 기록한다는 개념이거든요. 그게 영상이든 글이든 간에요. 나중에 보여드릴 건데 판타지 촌이라는 6권의 책도 나왔어요. 작년에 여기 살면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책이죠. 농촌 갈 준비하거나 프로젝트 준비하는 공공에서 헛물켜지 말고 지금 청년들이 이런 이슈를 가지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온다. 뭘 좋아하고 뭘 힘들어하는지 여기 다있다고 기록을 만든 거예요.

판타지촌 농사편 (사진출처: 팜프라 페이스북)

◇윤: 보통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처럼 만들어서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는데 팜프라촌 책을 보면 생활 지침서 같은 매뉴얼이잖아요.

◎유: 그걸 좋아하시는 분은 또 진짜 좋아하시더라고요. 매거진도 그 맥락이었어요. 지역에 있는 자원을 어떻게 보존할지, 농촌을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보존적이거든요. 다른 거예요. 보존적이면서 진보적이죠. 그 말은 기존의 것을 잘 지키면서 어떻게 마을을 발전시킬지에 대한 개념을 가지는 거예요.

생태를 봤을 때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개발할지와 같은 개념인 거죠. 그냥 “이렇게 생산됐어요.”가 아니라 앞으로 어업을 누가 준비한다고 했을 때 그걸 보고도 “아,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거구나.” 할 수 있게요. 많이는 못 넣었지만 특히 어업 쪽은 텃세 이슈도 많거든요. 바다가 엄청 고기를 낚을 곳이 많은 것 같지만 고기가 몰리는 구역이 정말 한정적이에요.

◇윤: 그렇죠. 어촌계들이 이익 단체가 돼서 그 안에서 어업 할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다는 개념이 되는 거죠.

◎유: 생업으로 하셔야 되니까요. 거기밖에 없는데 그게 지켜지지 못하면 아예 생계유지가 안 되는 거잖아요. 농지랑은 또 달라요. 농지는 빈 농지가 워낙 많은데 어업은 바로 현금화가 되잖아요. 잡아서 바로 경매장 보내면 되니까요. 농사는 1년 내내 키우잖아요. 다르단 말이죠.

옛날부터 기록돼야 했던 농촌 이야기에요. 할머니, 할아버지들 다 사라지면 이런 게 있어요. 책 보고 시금치 재배 못해요. 몇 월에 무슨 바람이 오고, 몇 월에 무슨 비가 오는데 그게 오고 나서 고추를 심어야 된다. 이런 게 있거든요. 근데 책에는 없어요. 또 지역마다 다르단 말이에요. 그걸 누가 전달 받아서 또 누구에게 전달해줘야 식량 공급이 되는 거예요. 도시는 계속 소비를 하기 때문에 식량에 있어서 계속 공급만 받는단 말이에요.

◇윤: 안타까운 게 여기는 노지 재배가 가능하다 보니 노지에 맞는 걸로 메뉴얼화 하는 말씀을 하시지만, 지금의 농업은 그런 변수 때문에 시설농업으로 다 바뀌고 있어요. 도시 농업 이야기가 나오면서 공장형 농업을 이야기하죠.

상추나 깻잎은 실제로 공장형 농업에 성공했거든요. 중국산 콩나물은 재배해서 오는 게 아니라 컨테이너에 콩나물 키트를 실어놓고 물을 주면 바다를 건너고 통관 절차를 거치면서 콩나물로 자라있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지만 남해는 자연 자원이 갖고 있는 농법도 보존하면서 발전하게 하기 위해 <팜프라>가 나섰다고 보입니다.

◎유: 이게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공장에서 재배되는 것은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다 못 먹어요.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흙하고 원소가 거의 비슷하거든요. 미네랄, 탄소 같은 경우는 무조건 흙에서 온단 말이에요. 이걸 액체 재배하고 공장으로 가면 겉은 멀쩡한 채소인데 영양소가 충분히 공급이 안 돼요. 그래서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요즘 애들 왜 이렇게 빌빌 거리냐고요. 노동판에 가서 60대 어른들하고 일을 해보잖아요. 체력이 못 따라가요. 저희가 땅심이 없어요. 그런 걸 보면 분명 먹는 것과 연관이 되게 있는데 지금은 그걸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이 없죠.

저도 시설농은 거의 탑급인 곳도 가보고 건물 형태로 하는 곳도 가보고 네덜란드도 가보고 했는데요. 결국 기본적으로 땅에서 하고 있는 쌀농사 이런 것들은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거죠. 꼭 땅에서 나와야 하는 주식으로 먹는 채소나 곡식들은 나와야 하는 거죠.

누군가 보존하고 전달해줘야 해요. 옛날에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이 됐는데, 나중에 인구 소멸이 되면 제가 보기에 가장 심각한 건 식량 문제에요. 그리고 만약 행정적으로 마을이 폐허가 된다고 하면 거기 들어간 몇 백 억의 공공재산이 다 사라지는 거거든요. 옛날 일본 다큐 중 하나를 보면 아파트 단지인데 혼자 살아요. 그럼 관리비를 혼자 다 내야 해요. 그러면 관리가 안 되잖아요. 폐허에 사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한 5명이 농촌에 살고 싶다고 하면 가능하냐? 안 되는 거죠.

◆김: 기존에 구축해놨던 게 없어지면 다음에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거죠.

◎유: 인구 소멸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위기감이 오잖아요. 그런데 그걸 실제 들여다보고 공부해보면 결국 도시도 무너지는 거예요. 도시는 지금 링거를 꽂고 있는 거예요. 다른 나라에서 사 오면 된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도 고령화 된 단 말이에요. 그러면 안 준단 말이죠. 옛날에 필리핀에서 쌀 폭등이 일어난 게,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쌀을 사왔어요. 필리핀은 3모작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수출 못한다고 하니까 필리핀에서 난리가 났던 거예요. 농촌이 무너지고 어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죠.

◆김: 종합해 보면 단순히 어촌과 농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요. 내가 어디에 살까 어떻게 살까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계속 펼쳐 가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 그렇죠. 저희처럼 아예 안에 들어와서 하는 팀이 기업도 많지 않고 그래서 기후 위기 같은 문제들을 이야기 하지만, 저희가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판타지 촌 라이프에요. 그들만의 촌 라이프스타일을 찾으면 좋겠어요. 와서 일단 살아보고 좋으면 살기만 해도 유지는 되는 거예요. 농사 안 지어도 됩니다.

(사진출처: 팜프라 페이스북)

◆김: 학교나 실험, 또는 잠깐 일탈 정도로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작게라도 시도를 해본 분은 용기를 낼 수 있을 텐데 비슷한 세계 속에서 비슷하게 살아가시는 분들에게는 앞으로 이 걸 어떻게 만나게 될까 정도의 고민은 있으실 것 같기는 하거든요.

◎유: 원래 하던 것들에 대해 회의감이 들어서 멈출 수만 있으면 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왜냐면 지난 2년 간 팜프라촌 했던 프로그램은 생활비만 한 달에 15~20만 원정도만 들고 오면 나머지는 네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다는 거였거든요. 그걸 멈출 수만 있으면 되는 거죠. 다시 돌아가도 되니까. 그게 되게 어려운 진입 장벽이에요. 저희가 4달~5달 정도를 하니까요. 그런데 왔다 갔던 사람들의 만족도는 되게 높은 것 같고요. 언젠가는 다시 살러 올 것 같아요.

(사진출처: 팜프라 페이스북)

◇윤: 이 정도에서 마무리로 넘어갈게요. 저희가 이번 이야기로 끝낼 게 아니라 이야기 들으러 한 번 더 찾아와야 될 것 같아요. 저희가 처음에는 로컬 벤처로서의 가능성을 보고 온 건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기업체 부설 연구소 수준으로 연구하신다는 느낌도 들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됐습니다. 농한기인 겨울 쯤 또 한 번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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