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12월특집(3)] 1부: <인(iiin)>, 제주의 가치를 담다 -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

beLocal 승인 2020.12.31 22:31 | 최종 수정 2021.01.06 10:56 의견 0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재정의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비로컬의 마지막 이야기는 <로컬 리브랜딩>입니다. 우리가 이미 '로컬'이라고 인식한 자원에 크리에이티브를 담아 로컬을 새롭게 브랜딩 한 로컬크리에이터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서귀포시 안동면 사계리에 위치한 <재주상회>는 제주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큐레이션 기업입니다. 로컬매거진 <인(iiin)>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제주라는 지역을 리브랜딩 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를 짚어보면서 ‘어떻게 하면 로컬의 콘텐츠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힐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1부: <인(iiin)>, 제주의 가치를 담다
2부: 여행자를 위한 마을 컨시어지 <사계생활>
3부: <계절제주>, 제주의 식문화를 구독하다
4부: 가장 새로운 것, 로컬 속에 답이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처음으로 지역기반 혁신창업 지원사업인 ‘지역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 정책을 도입하고 280개의 로컬크리에이터팀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이 중 21개의 ‘올해의 로컬크리에이터’를 선정했는데요. <재주상회>는 그 중에서도 최우수 로컬크리에이터로 선정됐습니다.

지난 12월 16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한 행사 <올해의 로컬, 로컬에서 다시찾은 가치>에서 <재주상회>를 소개하고 있는 고선영 대표 (beLocal)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는 항상 <재주상회>를 ‘콘텐츠 큐레이션 기업’이라고 소개합니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연결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더 확산시켜서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재주상회>의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재주상회>는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주 로컬매거진 <인(iiin)>을 만들어 콘텐츠를 담으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로컬매거진 중에서는 유일하게 전국에서 정식 유통되고 있는데, 매 호 발행되는 1만부 정도가 거의 완판 됩니다.

매거진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시작하던 <재주상회>는 다양한 창작자들과 함께 브랜드를 만들고 굿즈를 만드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에는 ‘수윔제주(swim jeju)’라는 굿즈 브랜드를 만들었죠. 그 즈음 오프라인 공간 작업도 하기 시작해서 2018년에는 <인(iiin)스토어>라는 편집숍을 표방한 공간을 만들었고, 오래된 은행을 재생해서 만든 <사계생활>이라는 커뮤니티 공간도 운영하게 됐습니다. 고 대표는 매거진의 오프라인 콘텐츠화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콘텐츠뮤지엄’이라는 콘셉트로 매거진에 담겼던 이야기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식문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도 시작하게 됐는데요. 제주 식재료와 로컬 생산자를 소개하는 <사계미식회>를 운영했고요. 지난 5월에는 제주의 식문화를 연구하는 <인(iiin)테이블> 연구소를 열었습니다. 이어 로컬푸드 정기구독 플랫폼 서비스 <계절제주>를 시작했죠. 제주의 콘텐츠를 활용한 1차 가공식품을 만들고 유통하는 것까지, 정말 다양한 콘텐츠의 확장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2020년 발행된 <인(iiin)>매거진. <인(iiin)>매거진은 계간지로 계절에 한 호씩 나온다. (iiin 인스타그램)

◆이 시대의 언어로 가공한 ‘제주의 가치’

2013년, 고선영 대표는 제주에 정착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제주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중 제대로 된 로컬매거진이 없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종이 잡지는 최근 들어 지속가능성이 많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잡지를 만들어 수익을 낸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고 대표는 ‘로컬매거진’을 운영한다는 건 그저 종이잡지를 만들어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인>매거진 창간을 했습니다.

<인(iiin)> 매거진은 ‘I'm in Island Now’의 약자입니다. 2014년 창간해서 계간지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매거진 창간 콘셉트는 ‘살아보는 여행’입니다.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여행을 하자는 콘셉트인데요. 인기 있는 ‘힙(hip)'한 곳들을 찾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에 살다보니 알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습니다. 제주이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이야기들인데요. 어떻게 로컬의 이야기를 녹여내었는지를 보면 각자의 로컬이야기를 고민하고 있는 로컬크리에이터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로컬푸드에 관해 다룬 콘텐츠가 있습니다. ‘수확할 것 없는 수확의 계절’이라는 주제인데요. 보통 가을 하면 수확의 계절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제주는 쌀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가을을 수확의 계절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또 사시사철 푸른 채소와 밭작물이 나는 곳이어서 김장 문화도 없습니다. 다른 지역과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재주상회>는 <인(iiin)> 매거진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유통망도 직접 설계했습니다. 매거진 창간 당시에는 제주도에 서점이 34개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학교 앞 참고서를 판매하는 곳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던 기존의 '서점'에서 벗어나 좋은 책 한 권을 판다면 그곳이 곧 서점이라는 생각으로 <재주상회>에 필요한 유통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여섯 군데에 불과했던 판매처는 1년 만에 100군데로 늘었는데요. 자발적으로 판매하겠다고 요청한 곳들이라고 합니다. 좋은 콘텐츠는 광고나 마케팅이 아니어도 알아서 발이 달리고 날개가 달려 사람들이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 고선영 대표의 철학이 빛을 발한 순간입니다. (iiin 인스타그램)

또 ‘제주’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흑돼지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많던 흑돼지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주제인데요. 여기에는 제주 사람들이 굳이 흑돼지를 먹지 않는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흑돼지가 토종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흑돼지와 백돼지를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어서 식당에서 굳이 시켜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집 밖에 있는 화장실에서 집집마다 흑돼지를 키웠는데 이 토종 돼지들은 몸집이 작습니다. 그런데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을 다 없애게 됐고 돼지들이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1980년대 후반 축산진흥원이 사라진 돼지를 다시 찾아 나서면서 토종 흑돼지 4마리를 찾아내는데요. 그 중 딱 한 마리가 수퇘지였다고 합니다. 그 돼지의 이름은 ‘김문’인데 제주에 있는 토종 흑돼지들은 모두 ‘김문’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인(iiin)> 매거진의 이야기들은 확실히 차별화 되어 있습니다. 그 지역의 힙한 관광지, 음식점, 카페를 소개하는 게 아니라 제주라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어서 더 재미있습니다. 콘텐츠를 따라가다 보면 여행할 때보다 더 제주를 알게 되는 느낌입니다.

<사계생활>에서 열린 ‘돌고래와 바다와 그들’ 전시 (2019 / beLocal)

종이에서 공간으로, 콘텐츠의 확장

고선영 대표는 잡지 한 권에 다 담을 수 없는 제주의 많은 이야기들을 <제주에 書>라는 단행본 라인에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제주에 書-제주카페2>가 나왔죠. 또 <포틀랜드 메이커스>, <제주식탁: 그 섬사람들은 무얼 먹고 살았나> 등의 단행본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종이에 담을 수 있는 콘텐츠들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늘 고민한다고 합니다. 그런 고민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종이에서 공간으로의 콘텐츠 확장도 이뤄졌습니다.

<재주상회>가 만든 <사계생활>이라는 공간을 만들 때 실험적으로 ‘산방산 아트앤북페어’를 열었는데요. 당시 전국에서 70개의 팀이 신청했고 이틀 간 2500명의 방문객이 다녀갔습니다. 마을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며 주민 분들도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산방산 페어는 2020년에도 작가의방, 세상에서 가장 큰 책방, 사계산책, 사계부엌의 다이닝, 파머스마켓 등의 프로그램들로 진행되었습니다.

남방큰돌고래 등지느러미를 픽토그램으로 담은 포스터 (사계생활 인스타그램)

오프라인으로 콘텐츠를 가져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느끼게 된 고 대표는 <사계생활>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진 이후 콘텐츠의 오프라인화를 계속해서 시도했습니다.

<재주상회>가 공간으로 꺼내온 콘텐츠 중 ‘돌고래와 바다와 그들’이라는 전시가 있습니다. 제주 연안에는 남방큰돌고래라는 희귀종 돌고래가 살고 있습니다. 제주에 있는 MAIC라는 단체가 이 돌고래들을 추적해 연구하고 있는데요. <인> 매거진에 실렸던 이 주제를 오프라인으로 가져온 전시였습니다. 돌고래를 기록한 영상들을 볼 수 있고, 관련 굿즈를 구매하거나 단체를 후원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죠.

단지 기록물만 전시해둔 건 아니었습니다. 돌고래는 모든 개체의 등지느러미 모양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사람 지문이 다 다른 것 처럼요. 그래서 약 200마리의 남방큰돌고래의 등지느러미에는 이름이 붙어있는데요. 그 이름과 모양을 픽토그램으로 만들어서 방문자들이모두 가져갈 수 있는 포스터도 만들었습니다.

'제주온더테이블' 전시에는 <인>매거진에 담겼던 내용들이 담긴다. (2019 / beLocal)

‘제주온더테이블’이라는 전시도 인상 깊습니다. 제주에서 30년 넘게 테일러링마스터로 일한 양복장인 김재민 선생님을 인터뷰하고 기사로 낸 뒤 오프라인화를 시도했습니다. 평생 양복을 만들며 모은 자료와 공부한 7권의 노트를 빌려와 전시하면서 한 사람의 일대기를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후에도 '제주온더테이블'이라는 이름으로 매거진에 담긴 이야기들을 오프라인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매거진 창간 당시부터 오프라인 콘텐츠화를 고민했던 고 대표는 이런 활동들을 ‘콘텐츠 뮤지엄’을 표방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종이로 보았던 콘텐츠를 공간으로 꺼내 독자들이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콘텐츠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계속>

저작권자 비로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