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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특집(3)] 4부: 가장 새로운 것, 로컬 속에 답이 있다 -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

beLocal 승인 2020.12.31 22:34 | 최종 수정 2021.01.06 11:02 의견 0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재정의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비로컬의 마지막 이야기는 <로컬 리브랜딩>입니다. 우리가 이미 '로컬'이라고 인식한 자원에 크리에이티브를 담아 로컬을 새롭게 브랜딩 한 로컬크리에이터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서귀포시 안동면 사계리에 위치한 <재주상회>는 제주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큐레이션 기업입니다. 로컬매거진 <인(iiin)>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제주라는 지역을 리브랜딩 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를 짚어보면서 ‘어떻게 하면 로컬의 콘텐츠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힐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1부: <인(iiin)>, 제주의 가치를 담다
2부: 여행자를 위한 마을 컨시어지 <사계생활>
3부: <계절제주>, 제주의 식문화를 구독하다
4부: 가장 새로운 것, 로컬 속에 답이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에도 로컬을 조명하는 여러 행사들이 있었고, 이 때 만난 로컬크리에이터들의 고민은 비슷했습니다. "어떻게 로컬 콘텐츠를 찾을 것인가?", "내가 찾은 로컬 콘텐츠를 기반으로 어떤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가?"가 대표적인 궁금증들입니다. 즉 로컬의 콘텐츠들을 어떻게 리브랜딩하고 비즈니스로 연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이 많았는데요.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는 “가장 새로운 것은 로컬 속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재주상회>는 <사계생활>을 마을 컨시어지로 삼고 내년부터는 사계마을과 함께 마을스테이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사계생활 인스타그램)

콘텐츠 너머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힘

어떻게 로컬의 콘텐츠를 비즈니스로 녹여낼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재주상회>의 활동이 있습니다. 2015년 <이니스프리>와 함께 한 ‘제주 컬러 피커’라는 프로젝트인데요. 가장 아름다운 색이 제주의 자연에 있다는 의미를 담아 컬러를 추출해 화장품에 입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때 나온 색의 이름은 ‘와랑와랑김녕파도’, ‘해녀가본녹색가바다’ 등입니다.

컬러의 이름이 이렇게 정해진 데는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해녀들이 많이 살고 있는 제주도 동쪽의 김녕마을에서 진행됐는데요. 마을 이장님께 “이장님이 보기엔 언제 김녕마을이 제일 예뻐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하늘이 되게 파란 날 김녕포구 방파제에 파도가 부딪혀 와랑와랑 쏟아질 때가 가장 예쁘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와랑와랑’은 제주어입니다. 주로 ‘여름 햇살이 와랑와랑 쏟아진다’는 표현으로 쓰이는 말이죠.

이장님의 답변에서 얻은 힌트를 가지고 ‘와랑와랑김녕파도’라는 파란색 반짝이가 잔뜩 들어간 매니큐어가 출시됐는데요. 반응이 정말 뜨거웠습니다. 고 대표는 모든 화장품 브랜드에 파란색 반짝이 매니큐어가 있는데, 왜 유독 이 제품에 소비자들이 환호하였는가에 대해 “이장님의 이야기를 산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기가 뜨거웠던 이 제품들은 추후 글로벌 시장까지 진출하게 되는데요. 고 대표는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제주를 모르고 김녕 마을을 모르더라도 이 매니큐어 컬러를 통해 “제주에 가면 김녕이라는 해녀공동체가 잘 이어지고 있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의 파도는 이런 색이래!‘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와랑와랑김녕파도' 색 매니큐어 (이니스프리 공식블로그)

제품이 아니라 음식에 제주 이야기를 녹여낸 프로젝트도 있었습니다. 역시 <이니스프리>와의 협업이었는데요.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카페의 메뉴 개발 작업이었습니다. 그동안 로컬에서는 로컬푸드를 가지고 수많은 메뉴들을 만들어내곤 했죠. 이럴 때 대부분은 하나의 메뉴를 먼저 개발한 뒤 로컬의 의미를 붙이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고 대표는 반대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제주의 이야기를 잘 담아낸 음식을 먼저 상상하고 그런 요리를 만들어달라고 셰프에게 요청한 것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메뉴가 ‘비양도수프’와 ‘애월선셋수프’입니다.

‘비양도수프’는 협재해변에 비양도가 떠 있는 모양을 반영했습니다. 제주 바다를 떠올릴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협재가 속한 한림읍은 브로콜리와 감자가 주로 생산됩니다. 또 비양도와 협재 사이에는 딱새우가 많이 잡힙니다. 그래서 딱새우를 베이스로 한 수프에 브로콜리와 감자를 활용한 수프를 만들었습니다.

애월은 제주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또 토마토의 주산지이죠. 그래서 토마토 수프를 만들고 두부로 노을 지는 바다에 해가 떨어지고 있는 모양을 흉내 내 ‘애월선셋수프’를 만들었습니다.

고 대표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유무형의 것들 너머를 상상하게 하는 힘이 콘텐츠에서 나온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로컬콘텐츠를 기반으로 어떤 비즈니스를 하든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떤 콘텐츠이냐 하는 것입니다.

<재주상회>는 제주의 이야기를 다양한 콘테이너에 담아 표현하고 있습니다. (iiin 인스타그램)

로컬의 가치를 이 시대의 언어로 가공하는 사람

2019년 진행된 <로컬 인사이트 트립 in 제주>에서 고 대표는 가장 새로운 것은 로컬 속에 있다며 ‘우리의 로컬다운 것, 가장 로컬스러운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가 가장 ‘힙(hip)'한 것들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찾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로컬에서 저마다 쌓아온 로컬의 시간과 문화와 자연과 사람들의 가치가 모였을 때 가장 새로운 것들이 시작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각자의 로컬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시간의 역사, 자연과 문화와 사회적 환경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 그 가치를 되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로컬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해요. 어떤 직업이 아닌 거죠. 로컬의 정체성과 같이 로컬이 로컬다운 것을 끊임없이 찾아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아우르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유무형의 것들에서 새로운 가치를 꺼내서 지금 시대의 언어로 잘 가공해서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로컬크리에이터가 아닐까요?

지방 소멸의 시대에서 소멸을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보면, 결국 콘텐츠가 있는 로컬이 소멸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매력적인 로컬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 사람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또 그 매력적인 콘텐츠에 이끌려 또 다른 사람들이 오는 선순환이 이뤄지면 지역은 소멸되지 않겠죠. 크리에이터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포틀랜드를 보면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요. 창의적인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지역의 지속성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어요.

그렇기에 <재주상회>는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연결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확산하고 새로운 커뮤니티가 생겨나도록 하는 일을 하는 거죠. 로컬크리에이터 개개인만 보면 작은 움직임이지만, 그들이 성장하고 연결되어 만들어내는 것들이 모이면 하나의 큰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선영 대표는 <인> 매거진 같은 로컬매거진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며 앞으로 많은 로컬크리에이터들과 협업을 하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beLocal)

<재주상회>는 다른 로컬크리에이터들과의 협업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제주에 원래 있던 가치 있는 브랜드를 재생산해내는 리브랜딩 작업을 할 계획인데요.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들을 기반으로 다른 지역으로 확장할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고 대표는 지난 중소벤처기업부가 개최한 <올해의 로컬, 로컬에서 다시 찾은 가치> 행사에서 다른 지역에서도 로컬매거진이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면서 <재주상회>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는데요. ‘제주’라는 지역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풀어내고 있는 <재주상회>가 다른 로컬크리에이터들과 어떤 협업을 통해 어떻게 로컬을 리브랜딩할지 앞으로의 이야기들도 궁금해집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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