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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맥주(1)] 크래프트 정신으로 바라보는 로컬크리에이터

beLocal 김혜령 승인 2021.01.18 20:33 | 최종 수정 2021.02.01 01:11 의견 0

한동안 편의점을 뜨겁게 달구었던 캔맥주가 있습니다. 식료품 코너에서 만나볼 수 있던 백곰 캐릭터가 라벨로 나타난 <곰표 맥주>입니다. 밀가루로 유명한 <곰표>와 크래프트비어로 유명한 <세븐브로이>가 합작해 생산한 맥주인데요. 한때 편의점마다 들어가 “곰표 맥주 있어요?”라고 물어보면 “다 팔리고 없어요”라는 대답만 돌아올 정도로 품절템이라 ‘허니버터칩’처럼 네티즌들 사이에서 뜨거운 이슈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편의점 맥주는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 캔의 즐거움’이라는 문화를 형성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해외 맥주 4캔을 만 원에 판매하는 행사는 소비자들에게 맥주의 다양한 맛을 경험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해외 맥주로 가득했던 편의점 맥주 코너에는 우리나라 지역 이름이 담긴 새로운 맥주들이 비집고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마니아들이나 즐기던 크래프트비어가 캔으로 제작되면서 편의점 유통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해외 맥주의 가짓수만큼 다양한 한국의 맥주를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곰표 맥주는 지난해 5월 출시 일주일 만에 누적 판매량 30만개, 연말 누적 판매량 200만개를 돌파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에 원활한 수급을 위해 롯데칠성에서 위탁생산(OEM)을 맡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곰베이커리 홈페이지 캡처)

크래프트비어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시기는 2010년대 초반입니다. 초기에는 직영 펍을 운영하며 맥주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요. 2014년 주세법 개정을 통해 외부 유통이 허용이 되면서 수입맥주와 소규모 양조장의 폭발적인 증가로 크래프트 맥주 붐이 시작이 되었고 최근에는 편의점, 대형마트 등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특히 지역 이름이 들어간 맥주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인기 품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맥주의 맛에서도 수입 맥주와 견주어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브루어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맥주는 맛이 없다’는 평가에서 벗어나 크래프트비어를 수출하거나, 해외 브루어리와 컬래버레이션을 추진하기도 하며 그 위상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또한 굵직 굵직한 국제 맥주 대회에서도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입상이 점차 증가하는 등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맥주가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식 크래프트비어가 대중에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제주맥주>의 역할이 컸습니다. 제주맥주는 ‘제주 펠롱에일’과 ‘제주 위트에일’을 주력제품으로 하여 대중들이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양산체제를 갖추기 위해 공장을 설계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해 지금의 판매량과 인지도를 확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주”와 “크래프트 맥주”라는 두가지 주제를 가지고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만들어낸 것이죠.

하지만 자신만의 색깔이 강한 맥주를 만드는 소규모 브루어리 중에는 “그런 맥주는 크래프트 비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크래프트 맥주‘는 다양한 시도에 비해 명확한 정의를 찾기가 쉽지가 않지만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크래프트 정신’이라고도 하는 ‘저항 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정신이 담겨있어야만 비로소 크래프트비어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크래프트 정신’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대표적인 한국의 로컬브루어리들이 미국 로컬브루어리의 출발점인 ‘크래프트 정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로컬브루어리에 ‘크래프트 정신’이 형성된 데는 ‘금주령’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1919년 금주령이 제정되면서 미국 사회에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인데요. 원래 금주법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지자 곡물 사용을 금지하려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곡물 남용 금지는 표면적인 문제가 되었고 복잡다단한 문화적, 사회적 문제가 투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금주령을 지지한 이들 중에는 곡물생산자인 농민들과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도 있었지만 인종차별주의자, 반 이민주의자, 심지어 독일을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금주령 제정 당시 미국의 맥주 산업은 독일 출신 이민자들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에 대한 증오심이 금주령 찬성에 동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금주령 시행으로 고통 받은 것은 서민들이었습니다. 사회 지도층은 금주령이 시행되는 상황 속에서도 술을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지만, 고달픈 노동과 퍽퍽한 삶을 한 잔의 맥주로 달래던 서민들은 술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서민들은 가짜 술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범죄조직들은 밀주를 만들어 불법 유통해 폭리를 취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금주령을 기반으로 이민자들을 모두 배척하는 움직임을 활발히 전개하며 백인 우월주의를 빠른 속도로 전파했습니다. 금주령은 이렇게 20세기 초반 미국 사회를 흔든 큰 사건이었습니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며 미국 전체가 혼란으로 빠져들자 1932년 대통령 후보였던 루스벨트가 법안 폐지를 공약했고, 대통령 당선 후인 1933년에 금주령 폐지가 이루어집니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특성 탓에 미국 전역에서 금주령이 완전히 폐지된 것은 1966년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금주법 이전 1,500여 개에 달하던 브루어리의 절반이 폐업해버린 데다 남겨진 곳도 기반시설이 낙후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맥주를 대량생산 할 수 있는 곳은 금주령 이전에 이미 대기업화되었던 <밀러>, <버드와이저>같은 브랜드들뿐이었습니다. 이들은 원가 절감과 대량생산에 능한 브루어리였고 주종은 ‘라이트 라거’ 위주였습니다. 결국 다양한 술을 맛볼 수 없게 되었고 미국 맥주산업은 다양성을 상실해 침체기를 맞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978년 ‘자가 양조’를 합법화하면서 미국 주류산업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주방에서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단순히 내 취향에 맞춰 집에서 만들어 마시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던 크래프트비어는 미국의 정신으로 여겨졌던 ‘도전 정신’, 금주령에 대한 ‘저항 정신’이 더해져 새로운 맥주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저항 정신’은 차별, 억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채를 덧입히는 데에서 두드러졌습니다. 그렇게 기성 맥주의 틀을 깨고 맛에 변화를 주며 새로운 변화를 꿈꾸던 사람들은 크래프트비어 특유의 ‘크래프트 정신’을 형성했습니다.

한국의 상황도 금주령을 경험한 미국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대기업에서 출시한 ‘라이트 라거’라는 기존의 맛을 거부하고, 다양한 맥주 제조방식과 원재료를 활용해 자신만의 새로운 크래프트비어를 만들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금주령 못지않게 한국의 크래프트비어 발전을 막고 있는 강한 규제인 주세법(종가세)에 대항하는 저항정신도 강했습니다. 또한 한 가지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다양한 국가의 맥주 생산 방식을 받아들여 한국식으로 해석하는, 한국의 도전과 저항 정신을 담은 ‘크래프트 정신’이 꽃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로컬브루어리들이 맛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지독할 정도로 고리타분합니다. 일반적으로 통용될만한 무난한 맛을 거부하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맛을 표현하기 위해 제조과정에서 몇 백 톤의 맥주를 버릴 정도입니다. 크래프트비어는 장인정신이 담긴 브루어리만의 새로운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생산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와 파생되는 문화적 콘텐츠들은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팬덤을 형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특정 팬들에게만 알려졌던 브루어리가 점차 입소문을 타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지며 그들이 추구하는 ‘로컬’의 세계관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은 “로컬브루어리 또한 로컬크리에이터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으로 작용합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철학과 세계관은 로컬푸드를 재해석함으로써 크래프트비어를 로컬F&B의 반열에 편입시켰고, 맥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로컬을 경험하는 느낌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평창의 <화이트크로우>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로컬푸드인 메밀을 맥주로 만들고 있습니다. 화이트 크로우 맥주에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산골 분위기와 메밀이 주는 독특한 맛이 동시에 담겨있습니다. 부산의 <와일드웨이브>는 한국적 재료를 사용한 사우어 맥주를 개발해 부산 송정과 광안리 바다를 찾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평창 메밀을 넣어 만든 <화이트크로우>의 맥주 '영벜'과 '블랙벜'. 블랙벜은 영벜의 형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다. (화이트크로우 인스타그램)

이런 이유로 로컬 트렌드 미디어 <비로컬>은 ‘로컬맥주’라는 주제로 로컬브루어리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크래프트 정신이 무엇인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또 브루어리들이 만든 로컬 맥주의 맛을 통해 크래프트 정신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해석해보려 합니다. 나아가 ‘크래프트 정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로컬을 규정하고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로컬크리에이터의 특징에 대해서도 보다 명확하게 규명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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