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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혁주
  • 로컬맥주
  • 입력 2021.01.28 19:05
  • 수정 2021.02.01 01:04

[로컬맥주(4)] 1부: (탐방)동네 가게로 은신한 핫 플레이스 <버드나무 브루어리>

맥주문화가 발달한 독일에서는 “양조장 그림자를 벗어나면 맥주 맛이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브루펍, 맥주 양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로 인해 맥주가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강릉 홍제동에 있는 <버드나무 브루어리>를 가보면 그 말이 확실하게 와 닿습니다.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번화가도 아니고, 바닷가도 아닌 시골 조용한 동네에 숨어있습니다. 취재를 위해 <버드나무 브루어리>를 찾아가다가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여러 번 지나쳤을 정도입니다. 근처에 차를 세운 채 “이런 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버드나무 브루어리>에 들어서며, 자주찾는 동네백반집 같은 푸근한 분위기에 금새 빠져들었습니다. 오래된 양조장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으며 자신만의 색채로 가득한 공간이 맥주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만도 했습니다.

1부: 동네 가게로 은신한 핫 플레이스 <버드나무 브루어리>
2부: 한국적인 맥주, 우리 문화가 아닌 것을 우리 문화로-박병륜 양조팀장
3부: 강릉을 담은 맥주

2021년 1월 <비로컬> 특집 주제는 "로컬맥주"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살고 싶은 곳에서 추구하는 로컬크리에이터의 정신은 크래프트비어를 만드는 로컬 브루어리의 크래프트 정신과도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통상 수제맥주, 크래프트비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기존의 의미 속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의미를 찾기 위해 "로컬맥주"라는 주제로 로컬트렌드를 탐사하는 기획입니다.

버드나무 브루어리 입구 (beLocal 윤준식 편집장)

강릉 양조장 DNA에 새로운 색채를 더하다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의 어머니인 ‘유화(柳花)부인’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유화(柳花)’는 ‘버들 류(柳)’, ‘꽃 화(花)’, 버드나무 꽃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유화부인 이야기 속에 우리나라 역사 최초로 술이 등장하기에 더욱 뜻깊습니다. ‘해모수와 유화부인이 함께 술을 즐겼다’라는 이야기인데요. 유화부인의 이름을 따서 한국 고유 맥주를 만들겠다는 정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버드나무 브루어리>가 있는 장소는 원래 막걸리 양조장이 있었던 공간입니다. 1970년대 강릉연합 탁주로 운영되던 곳을 2014년 브루펍(브루어리 펍)으로 바꾸어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술도가가 지닌 전통을 계승하며 <버드나무 브루어리>가 만드는 새로운 맥주를 즐기는 재미있는 공간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은 ‘어릴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받으러 오던 곳’이라는 추억과 향수를 떠올립니다. 맥주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은 젊은 세대들은 ‘재미있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하며 이곳을 찾습니다.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자신들의 새로움을 만들겠다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공간에도 담아낸 셈입니다.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오래된 막걸리 양조장 구조를 훼손하지 않고 지금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막걸리를 빚는 재료로 고두밥이 들어가야 했는데, 고두밥을 식히던 공간에는 화초와 나무를 심어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예전에 출입구로 활용되던 문도 프레임을 살려 공간을 장식하는 조형물로 활용했습니다. 리모델링 할 때 사용한 천장재 역시 양조장 마룻바닥에 있던 나무를 이용했습니다. 나무에 나이테가 새겨지듯 건물이 지닌 역사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1층 공간. 오래된 흔적들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beLocal 윤준식 편집장)


◆한 공간에서 두 가지 즐거움을 얻다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1층과 2층,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층과 2층은 막걸리 양조장 구조를 최대한 활용했는데 1층과 2층의 채광에 변화를 주어 둘이 서로 다른 공간인 듯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1층에 들어서면 어두운 공간과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외벽, 목조를 활용한 인테리어, 벽면에 작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공간에 설치된 노란 조명이 눈에 들어옵니다. 난방을 위해 설치한 장작 난로는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더 따뜻하게 만들어줍니다. 난로 속 나무가 타는 냄새, 타닥거리며 장작이 타는 소리, 잔잔한 음악이 어우러지며 낮에도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어느 새 이 공간은 시골 동네가 아니라, 90년대 오래된 학교 교실, 산 중턱에 있는 어느 아늑한 산장으로 변화합니다.

옛날 양조장이 지닌 특징들을 색다른 인테리어 포인트로 살린 점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천장에 굴뚝같은 작은 창이 보입니다. 이것은 갓 지은 밥이 식을 때 발생하는 증기가 바깥으로 배출되도록 돕는 굴뚝 역할을 했던 창인데요. 높은 고도에서 1층까지 떨어지는 빛이 공간에 확산되며 어떤 조명도 연출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2층은 공간은 예전에 막걸리 양조장 사무실로 활용되던 곳입니다. 3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던 공간의 벽을 허물고 손님들이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넓은 홀로 조성했습니다. 벽을 부수고 커다란 홀을 만들 때 건물이 지닌 이야기를 모두 없애지 않고 벽이 있었다는 흔적을 남겨두었습니다. 한쪽 벽면을 모두 유리창으로 만들어 동네의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2층은 커다란 홀, 창가 등 자유롭게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beLocal 윤준식 편집장)

2층 창가에 맥주 한 잔을 놓고 앉으면, 마치 내가 홍제동이라는 커다란 화폭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듭니다. 낮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따사로운 햇볕과 여유로운 동네 분위기를 즐길 수 있고, 밤에 오는 손님들은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와 가로등 불빛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날씨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바뀌는 풍경을 즐기며 맥주를 한잔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뒤편에는 커다란 마당이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기존에 막걸리 공장만으로는 넓은 마당을 조성하기 힘들어 근처 건물을 매입해 공간을 확장했다고 합니다. 뒷마당 한쪽에는 바비큐 장비를 설치했으며 잼이나 과일청등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해 식품을 만들어내는 공간도 마련했습니다. 마당에는 대나무와 배롱나무도 심었습니다. 배롱나무는 강릉을 상징하는 꽃인 백일홍을 피우는 나무입니다. 이렇게 계절의 변화에 따라 공간이 변화하는 모습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맥주를 마실 수 없는 사람을 위해 만든 검정식혜 (beLocal 김혜령 에디터)

◆계속 오고싶게 만드는 매력, 투박한 친절함

단순히 지금까지의 설명만 보았을 때 ‘서울에 있는 공간과 다를 게 뭐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단순히 ‘힙한 공간’으로 조성된 것이 아닙니다. 맥주의 맛과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투박한 친절함은 손님들을 공간 속으로 흡입하는 매력포인트가 됩니다.

공간을 찾는 손님 중에는 공간이 어두워서 메뉴판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불평을 털어놓는 손님들도 있습니다. 맥주를 잘 알지 못하는 손님들은 어떤 맛의 맥주가 좋은지 알 수 없어 공간을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공간을 어려워하는 손님들을 위해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작은 배려를 심어두었습니다.

먼저 메뉴판에는 <버드나무 브루어리>가 만든 맥주를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간결하게 설명해두었습니다. 맥주의 도수, 들어간 재료를 소개하며 맥주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맥주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부족한 설명은 맥주를 서빙하는 서버들의 친절한 해설로 대신합니다. 이런 서비스가 크래프트비어가 친숙하지 않은 손님들에게 맥주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어줍니다.

처음에는 글자가 큰 메뉴판을 만들까 했지만, 서버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맥주가 전달된다면 글자 크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다고 합니다. 서버들의 설명을 곱씹으며 맥주를 마시면, 미처 느끼지 못했던 맛들이 살아납니다. 습관적으로 마시는 음료로서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맛을 인지할 수 있게 변신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죠.

버드나무 브루어리 한 편에 자리한 양조시설. 최근에는 이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더 넓은 양조시설을 갖추게 됐다. (beLocal 윤준식 편집장)

서울에서 양양까지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대중교통으로 강릉을 찾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함께 온 사람들은 맥주를 마실 수 있지만 운전을 해야하는 운전자는 맥주를 그저 바라만 봐야 하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한편 공간의 특별함을 느끼고 싶어서 이곳을 찾았지만 건강이나 체질 등의 문제로 술을 못 드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검은식혜’를 준비했습니다. 식혜와 맥주는 발효 과정을 거친다는 데에서 공통점을 지니기에 맥주를 대체하는 음료로는 제격입니다. 특히 이 식혜는 검은 빛깔의 탄산 식혜로, 식혜의 시큼함과 달콤함에 타닥거리는 탄산감은 마치 맥주를 마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브루어리에서 생산하는 음료 중 비주류 음료는 ‘검은식혜’ 뿐이지만, 맥주를 마시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안성맞춤입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버드나무 브루어리>만이 지닌 새로운 음료까지. 이 공간은 사람들에게 강릉에 왔으니 꼭 한번 들러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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