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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혁주
  • 로컬맥주
  • 입력 2021.01.31 02:30
  • 수정 2021.02.01 11:29

[로컬맥주(6)] 3부: 기울어진 공장, “무개성에서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 거쳐야”-김관열 대표

부산의 <와일드 웨이브>는 사워 와일드 비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묵묵하게 개척하고 있는 브루어리입니다. 특히 자연 효모와 미생물을 활용해서 ‘자연의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술’이라는 <와일드 웨이브>만의 가치를 담고 있는데요. 자연 환경을 활용하는 만큼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플로깅’과 같은 프로그램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 되기를 꿈꾸는 김관열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와일드 웨이브>가 추구하는 가치와 크래프트비어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1부: (양조장 탐방) 부산의 거친 파도와 꼭 닮은 곳, <와일드 웨이브>
2부: 자연의 방식으로 만드는 술 ‘와일드 비어’-김관열 대표
3부: 기울어진 공장, “무개성에서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 거쳐야”-김관열 대표
4부: 자연 효모와 새콤달콤한 맛의 조화로움

2021년 1월 <비로컬> 특집 주제는 "로컬맥주"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살고 싶은 곳에서 추구하는 로컬크리에이터의 정신은 크래프트비어를 만드는 로컬 브루어리의 크래프트 정신과도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통상 수제맥주, 크래프트비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기존의 의미 속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의미를 찾기 위해 "로컬맥주"라는 주제로 로컬트렌드를 탐사하는 기획입니다.

부산 송정에 위치한 <와일드 웨이브>의 브루펍 (beLocal 윤준식 편집장)

▶라거라는 대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시장에 대항마로 크래프트비어가 나오게 됐다고 설명을 해주셨어요. 최근에는 정부에서 주세법 개정으로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꾸거나 OEM 생산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등 규제를 완화해주는 추세인데요. 규제 완화로 인해 크래프트비어 시장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요?

☞<와일드 웨이브> 김관열 대표: 규제가 완화되면 산업이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기업에 국한된 산업 발전이 가속화 되고 있어요. 점점 자본이 있는 회사와 없는 회사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종량세도 추가적으로 사업 확장이 가능한 기업에 유리한 제도에요. 왜냐하면 기존의 종가세는 돈을 많이 들이면 들일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구조인데요. 과세표준이라는 세금을 낼 때 임대료나 장비도 포함이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단순히 비싼 재료를 못 쓰는 게 아니라 고급 인력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제조든 설치든 운영이든 돈이 많이 들어가면 세금을 더 많이 내야하는 구조였던 거죠.

그래서 종가세가 종량세로 바뀌면 대기업 세금 부담은 크게 줄지만 소규모 양조장은 사실상 큰 차이가 없어요. 결국 기울어진 공장이 생기죠. 코로나로 인해 소비자의 발길은 끊어지는데 자본력이 있는 큰 양조장들은 편의점이나 마트에 납품할 수 있어 오히려 호황입니다. 영세한 양조장들은 병입 장비 도입에도 돈이 들고 장비를 들여놔도 판로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요.

소규모 브루어리들은 유통망 확보 측면에서 여전히 고전하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찾아올 수 없어서 수익을 내는데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어 운영 자체도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이 상황을 이겨내려면 유통을 신경 써야 하는데, 병입이나 패키징을 생각해야 하잖아요. 이런 건 장치산업인데 주류는 또 사치재에요. 사람들은 맥주에 대해 비싸지 않은 술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크래프트비어가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판매하는 맥주는 저렴하죠. 특히 편의점은 4캔에 만 원이 일종의 기준이 되었고요. 그런데 양조를 해보니 그 가격을 맞추기가 힘들더라고요.

<와일드 웨이브>의 생산 시설. 오크통을 더 활용하기 위해 양조장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beLocal 윤준식 편집장)

그렇다보니 소규모 브루어리들이 비슷한 맛을 추구하면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찾는 맛을 만드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필스너, 바이젠, 둔켈, 페일에일, IPA, 스타우트 이 6가지 종류를 안 만드는 양조장이 없어요. 패키징을 다르게 해서 매대에 두면 다르게 보이겠지만, 마셔보면 결국 비슷한 맛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에게 남는 것은 결국 브랜드죠.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브루어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남습니다.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할 것인가, 제품을 홍보할 것인가. 결국 거대 자본으로 프로모션과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는 대기업이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에요.

영세한 브루어리들은 소비자들이 맛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순간 잊혀질 수 있어요. 사람들이 찾지 않는 브루어리는 점점 어려워지게 마련입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되었죠. 대부분의 회사들은 생맥주 케그 유통으로 운영을 이어갔는데, 코로나 단계가 올라가면서 맥주 유통 판로가 막혀버렸어요. 대형 양조장들은 다양한 판로가 확보되어 있지만, 작은 브루어리들은 판로가 적어요.

<와일드 웨이브>는 오크통 숙성과 자연 효모를 통해 <와일드 웨이브>만의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beLocal 윤준식 편집장)

▶그렇다면 <와일드 웨이브>는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와일드 웨이브> 김관열 대표: 어떻게 보면 우리가 대형마트에서 볼 수 있는 주류의 종류가 다양해진 게 얼마 안 됐어요. 수입 주류들이 매대를 채우고 있었을 뿐이죠. 과자 같은 소비재나 냉동제품, 밀키트 등이 발전하는 걸 보면 매년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러 규제로 다른 F&B보다 주류의 변화가 느리다고 생각해요. 소비자들이 니즈가 없는 게 아니라 그런 니즈를 막고 있었던 거죠.

저희는 최근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정공법을 선택했습니다. 품질, 가격, 패키지를 다 고려해 고급스러운 술이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변화하려고 해요. 그래서 기존에 만들던 맥주 라인을 정리하고 사워 와일드 비어에 더욱 집중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익숙하고 많이 찾는 제품에서 벗어나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극한으로 몰아붙여서 오히려 우리만의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뻔하지 않은, 우리만의 캐릭터를 잡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와일드 웨이브>는 앞으로 사워 와일드 비어라는 특징을 더욱 살릴 계획이다. (beLocal 이상현 에디터)

▶기울어진 공장이긴 하지만 소규모 브루어리들도 이 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와일드 웨이브> 김관열 대표: 저는 “무개성에서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소규모 브루어리일수록 캐릭터를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맥주 시장이 확장하면서 소비자들이 다양한 맥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맥주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이런 다양성 속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도록 하는 데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기울어진 공장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표현을 하긴 했지만, 대기업들도 자기 자본을 태워가면서 시장을 넓혀주고 있는 거거든요. 예전에는 수입 맥주를 마시던 분들이 국내 맥주를 즐기게 되었잖아요. 한 번 바뀐 사람의 습관은 이전으로 돌아가기가 어렵거든요.

코로나가 끝나고 조금 자유로워지면 분명 이전에 비해 크래프트비어 시장이 더 넓어질 거예요. 이 때 지역의 양조장들이 어떻게 준비되어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죠. 그렇다면 결국 각자의 색깔을 더 고유하게 하는 쪽으로 가야할 것이고요. 만약 국내에서 우리 제품을 찾아주는 소비자를 만나기가 어렵다면 해외 시장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관열 대표는 소규모 브루어리들이 앞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더욱 확고하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beLocal 윤준식 편집장)

▶로컬맥주를 취재하다보니 ‘크래프트 정신’이라는 말을 많이 접하게 됐는데요. 다양성을 추구하시고 <와일드 웨이브>만의 캐릭터를 다시 확립하겠다고 하셨는데, 대표님께서도 크래프트 정신을 추구하시는 건가요?

☞<와일드 웨이브> 김관열 대표: 저도 미국의 크래프트 문화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요. 독일의 양조장을 방문했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어요. 독일에는 천 년이 넘어가는 양조장도 있거든요? 결국 크래프트비어라는 건 오래된 원류 문화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독일에도 맥주 대기업들이 많아요. 그런데 독일의 지역 양조장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술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프라이드를 사랑해주는 지역민들과 맥주 문화를 지키며 함께 호흡하고 있죠. 그 전통이 이어지면서 문화로 자리 잡은 거예요.

크래프트 정신을 전파한 미국조차도 자본이 들어가면서 크래프트비어의 규정을 계속 바꾸고 있어요. 결국 밖에서 크래프트비어를 정의내리기 보다, 스스로 우리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지역 양조장이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좋은 술문화들이 역사속으로 사라졌죠.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문화를 재정비하고 정립해 가는 과정을 크래프트 정신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크래프트비어를 만들고 있는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가 만드는 맥주가 지역에서 어떤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를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크래프트문화가 형성되면 독일처럼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가 생길 것이고, 각자가 가진 생각의 차이를 맛으로 표현하고 그 생각과 가치에 공감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크래프트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라고 봅니다.

▶<와일드 웨이브>가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와일드 웨이브> 김관열 대표: 와일드비어는 특성상 다른 맥주들보다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런 맥주가 있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게 우선이고요. 다양한 맥주를 맛보는데 거리낌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들이 산업을 키우고 있어요. 가게에서 취급하는 맥주만 보더라도 변화가 보이죠.

양조장 비즈니스는 단시간에 자리 잡기가 어려운 사업이에요. 독일처럼 700~800년을 바라봐야 하는 일이죠. 우리나라는 오래된 양조장이 거의 없는데요. 한국의 오래된 양조장으로 클 수 있도록 초석을 마련하는 게 첫 번째 목표이고요.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춰 오랫동안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닦고 싶습니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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