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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혁주
  • 로컬맥주
  • 입력 2021.02.25 20:23
  • 수정 2021.02.26 12:41

[로컬맥주(10)] 3부: 쉼표가 느껴지는 글씨 '개항로 맥주체'-"전원공예사" 전종길 사장

로컬 브루어리 <인천 맥주>와 '개항로 프로젝트' 이창길 대장이 함께 만든 크래프트비어는 새로운 로컬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크래프트비어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맥주로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끝에 만들어진 <개항로 맥주>. 맥주병에 그려진 '개항로'라는 글씨는 54년 동안 개항로에서 목간판을 만든 <전원공예사>의 전종길 사장님이 썼고, 인천 <인형극장> 영화 간판을 그리다가 <삼화 페인트>를 약 20년 동안 운영하고 있는 최명선 사장님이 맥주 포스터 모델이 됐습니다. 또 <개항로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두가 알 수 있도록 <라이트 하우스> 전시장에서 스토리를 공유하기도 했는데요. '지역성을 포함하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술'인 <개항로 맥주>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1부: 작은 공간에 알차게 담았다!-<개항로 맥주> 팝업
2부: "모델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신다고요?"-<개항로 맥주> 포스터 모델, 최명선 사장
3부: 쉼표가 느껴지는 글씨 '개항로 맥주체'-<전원공예사> 전종길 사장

비로컬 2월 특집 주제는 1월과 마찬가지로 "로컬 맥주"입니다. 1월에는 '크래프트 정신'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2월 로컬맥주 특집에서는 크래프트비어 문화가 로컬브루어리를 통해 어떻게 문화로 정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개항로 맥주> 병에 새겨진 글씨를 직접 쓴 <전원공예사> 전종길 사장님 (beLocal 이상현 에디터)

<개항로 맥주> 병에 적힌 '개항로' 글자를 보면 개항로만의 특유한 분위기가 담겨있는 듯 한데요. 이 글씨체는 개항로에서 54년 동안 목간판 작업을 한 <전원공예사> 전종길 사장님이 쓴 것입니다. '개항로 프로젝트' 중 하나로 만들어진 <개항로 고깃집>의 목간판 역시 전 사장님이 쓴 글씨인데요. 목간판을 만드시던 사장님의 글씨체가 어떻게 해서 '개항로 맥주체'가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요즘 이렇게 나무를 깎아서 새기는 간판을 보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이 일을 시작하신 게 언제인가요?

☞<전원공예사> 전종길 사장(이하'전종길 사장'): 처음에는 인천에 티크 가구를 보급해서 인천 발전을 시켜보겠다 해서 인천에서는 제가 처음으로 조각공예사를 운영했어요. 후배 양성도 하면서 조금씩 목간판을 했었거든요. 후배들이 나가서 공예사가 점점 늘어나기도 했고, IMF가 오니까 우리도 맥을 못 추겠더라고요. 그런데 조각 공예를 했다보니까 목간판도 잘 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목간판 가게를 차렸어요. 그 때가 1968년도였습니다. 처음에는 종업원들도 있고 그랬는데 목공예 일이 줄어드니까, 90년대부터는 혼자 했죠.

개항로 맥주 병에 새겨진 글씨는 전종길 사장님이 직접 쓴 붓글씨다. (beLocal 김혜령 에디터)

▶그 때부터 하신 거면 54년째 목간판 일을 하셨네요. 가게 안에 고생하신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이 작은 가게 안에서 정말 많은 일을 하신 것 같아요. <개항로 프로젝트>에 이창길 대장은 어떻게 아시게 됐나요?

☞전종길 사장: 이창길 씨가 개항로 ‘이웃사랑모임’ 프로젝트 관장이었어요. 인천에서 50년 이상 점포를 운영한 사람들을 50명을 뽑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가게에 일을 보러 누가 왔다가 우리 가게도 50년이 넘었다고 했더니 이창길 씨한테 가서 이야길 했나봐요. 가게로 찾아왔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50번째 가게로 가입하게 되었네요.

우리 가게 왔을 때 간판들을 보더니 앞으로 이 일이 더 잘 될거라면서 지금 젊은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선전을 좀 해보겠다고 그래요. 그리고나서는 이웃사람 개항로 사무실 개업식에 초청받아서 갔어요. 가보니 인천 부시장도 오고 사람도 많고 사진 전시도 되어 있고 그렇더라고요. 그 때 나를 목간판, 목공예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해주었는데, 사람들이 다 좋아하더라고요.

전종길 사장님은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자리에서 목간판 작업을 해오고 있다. (beLocal 이상현 에디터)

▶<개항로 맥주> 글씨 작업은 어떻게 하시게 됐어요? 사장님의 서체가 개항로 느낌을 주더라고요.

☞전종길 사장: 고맙게도 제안을 먼저 해주었죠. 이전에 <개항로 고깃집> 간판을 직접 붓글씨로 써서 만들었어요. 요즘에는 컴퓨터 글씨가 나오니까 글씨도 빨리 마르고 나오기도 빨리 나오고 그렇죠. 옛날에 컴퓨터 나오기 전에는 다 붓으로 써서 했거든요. 내가 서예가가 아니라 잘은 못쓰지만, 이창길 씨는 글씨가 비뚤어지든 뭐하든 내 글씨에 쉼표를 받고 싶다는 거예요. 개항로 맥주도 그런 의미에서 요청을 받아서 하게 됐지요. <개항로 맥주> 글씨는 <개항로 고깃집> 썼던 붓글씨를 축소해서 만든 거예요.

우여곡절이 많이 있었지만,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일할 수 있어 좋다는 전종길 사장님. 가게에는 긴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다. (beLocal 이상현 에디터)

▶최근에는 목간판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어요.

☞전종길 사장: 이창길 씨가 목간판 작업물 받아간 뒤로 주문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개항로 통닭> 메뉴판도 다 써달라고 했거든요. 내가 직접 쓴 게 매력이 느껴진다고 그게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랬더니 이제 여기 카페하는 젊은 친구들도 와서 해달라고 하고요. <개항로 고깃집> 하고 나서는 서울에서도 큰 간판들 많이 해가더라고요. 목간판 한 게 인터넷에도 올라가고 하니까 안양, 안산에서도 주문이 들어옵니다.

젊은층에게는 요즘 복고풍이 있잖아요. 그래서 목간판에 대한 관심이 지금 돌아오는구나 싶어요. 젊은 사람들이 공예를 알고 나무 간판을 알아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전에는 젊은 친구들이 목간판 안 했거든요. 이렇게 도와주는 분들이 있으니 역시 혼자는 못 사는구나 싶습니다.

<전원공예사> 전종길 사장님 (beLocal 이상현 에디터)

▶<개항로 맥주>를 비롯해서 개항로 작업을 함께 참여하신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전종길 사장: 다들 좋게 봐주니 고맙습니다. 제 나이가 이제 85세쯤 되었는데 인천에 산 지 60년이 넘었습니다. 우리집 애들도 다 인천 사람이고요. 그래서 인천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요. 인천의 맥주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주고 즐겨 드시고 하면 좋겠습니다.

<개항로 맥주>에는 이렇게 노포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었는데요. 서로 상생하고 공감하는 이야기들이 생기면서 로컬 커뮤니티 문화가 형성되는 모습입니다. 마니아들만 즐기는 줄 알았던 크래프트비어를 젊은층부터 동네 어르신들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개항로 맥주>의 매력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는데요. 전종길 사장님의 '개항로' 글씨체는 이제 누군가에게는 '개항로 맥주체'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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