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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맥주(17)] '로컬스러움'을 만드는 로컬 맥주 - 월간 <비로컬> 편집부

비로컬 2월 특집 주제는 1월과 마찬가지로 "로컬 맥주"입니다.

1월에는 '크래프트 정신'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로컬브루어리 역시 지역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며 로컬크리에이터와 같이 하고 싶은 일을 살고 싶은 곳에서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로컬 맥주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2월 로컬맥주 특집에서는 크래프트비어 문화가 로컬브루어리를 통해 어떻게 문화로 정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맥주문화와 역사를 짚어보며 로컬문화 속 로컬 맥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으로 두 달간의 로컬맥주 특집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비로컬 윤준식 편집장, 이연지 에디터, 김혜령 에디터가 함께합니다.

(beLocal 이상현 에디터)

◆우리나라 맥주 문화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비로컬 윤준식 편집장(이하 ‘윤’): 1월에는 크래프트 정신과 로컬크리에이터 간의 연관성을 찾아봤다면, 2월에는 로컬맥주 커뮤니티 형성과 역사, 문화적 배경 사이의 연관성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이연지 에디터(이하 ‘이’): 2월에는 로컬맥주 특집 관련해 인천과 충주에 다녀왔는데요. 인천에서는 지금은 <인천 맥주>로 이름이 바뀐 (전)<칼리가리 브루잉>에 가서 이번에 <개항로 맥주>를 추진하신 ‘개항로 프로젝트’의 이창길 대장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충주에서는 <블루웨일 브루하우스>의 두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윤: 지난 팟캐스트에서 맥주 전시회 “키벡스”를 개최하고 운영하는 <GMEG> 이해정 대표님이 2014년 벨기에와 미국의 다양한 수입맥주가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크래스트비어 역사가 분기점을 맞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대표적으로 편의점에서 “외국산 맥주, 만 원에 4캔” 하는 행사를 통해 필스너를 비롯한 다양한 라거, 스타우트, IPA, 에일 등의 맥주가 소개된 것이 계기였죠. 밀레니얼 세대 중심으로 맥덕 열풍과 함께 크래프트비어 열풍이 일어났습니다.

2013년, 2016년에 국제맥주 대회에서 우리나라 기성 맥주인 <OB맥주>, <카스맥주>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이후 크래프트비어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걸 보면 확실히 “2014년이 우리나라 맥주 문화와 맛의 분기점이 되는 해가 아니었나?”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두 분은 우리나라 맥주 문화의 시작을 어느 지점으로 생각하세요?

●김혜령 에디터(이하 ‘김’): 전 편의점에 맥주가 있어서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우리나라 맥주 문화는 폭탄주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윤: 지금 편의점 맥주와 폭탄주를 말씀하셨는데, 두 가지 모두 맞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폭탄주가 어디서 시작됐냐?”를 따질 때, ‘폭탄’이라는 용어 때문에 군대 문화 이야기를 합니다. 군부독재로 여겨지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을 말하는데, 군대 문화에서 폭탄주 문화가 시작된 이유가 있어요.

우리나라에 맥주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 고가품이었습니다. 이건 슬픈 역사와도 관련 있는데, 우리나라의 맥주 문화는 내부에서 자생한 게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하면서 시작되었거든요.

일본이 1930년대 중일전쟁을 치르면서 만주국과 괴뢰정부를 세우고 전선에 물자를 보내려고 생산한 다양한 식료품 중의 하나가 맥주였습니다. 그 생산기지로 조선을 이용했는데, 만들어지면 전선으로 가니 민간에는 잘 풀리지 않아서 돈 많은 특권층만 마셨죠. 지금으로 치면 양주와 같은 고가품이었습니다!

◎이: 외국에서는 물처럼 마셨던 맥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고가품으로 시작했군요?

◇윤: 네. 그래서 맥주 문화 자체가 없었는데, 시중 맥주는 비싸도, 군대 PX에서는 세금이 감면된 형태니까 저렴하게 마실 수 있었죠. 군대 내 분위기가 빨리 마셔서 취하고, 깨서 근무하는 식이니 폭탄주 문화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군사 문화가 직장의 회식 문화로 이어지면서 양주나 소주를 타서 마시는 폭탄주가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또, 우리나라 편의점은 “88올림픽” 직후 생기기 시작해 90년대 초에 보편화됐는데요. “88올림픽”을 계기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외국 소매점 문화가 들어와야 한다”고 말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편의점 브랜드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4시간 영업이니, 밤늦게 술 한잔하고 싶은 사람이 편의점에 가서 술을 마시게 됐죠.

◆크래프트비어 열풍은 라거에서 시작했다?

◎이: 저는 이번에 로컬 브루어리를 취재하면서 맥주 문화가 새롭게 바뀌고 있다고 느꼈어요. 처음 취재를 시작하면서 생각한 포인트가 “로컬크리에이터와 로컬 브루어리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였잖아요? 로컬크리에이터가 로컬에서 자신의 세계관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듯, 로컬 브루어리도 지역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이 담긴 맥주를 만들어 지역 주민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윤: 네. 저는 우리나라의 <OB맥주>와 <하이트맥주> 중심의 라거 맥주 문화가 크래프트비어 열풍에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하는데요. 라거 맥주가 기본이니 라거가 아니면 특이한 맥주처럼 느껴진 거죠. 자신이 가진 독특하고 특별한 세계관을 맥주를 통해 표현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왜 우리나라 맥주의 주류가 라거가 된 것인지부터 살펴보려 합니다.

지난 1월 방송에서 우리나라 맥주 역사가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는데요. 원래는 1876년 강화도조약 때 처음 맥주가 들어왔습니다. ‘함포외교’라고 “문을 열지 않으면 다 부숴버리겠다!”고 하니 개항도 하고, 서구문물을 들여왔죠. 당시 외국 선원이 버린 맥주병을 안고 찍은 조선인의 사진도 발견되었는데, 그 개항기 때의 맥주는 긴 항해 동안 보관성을 잘 유지할 수 있는 IPA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주류 맥주가 라거가 된 이유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맥주가 조선에 들어온 것과 큰 연관이 있습니다. 먼저 <기린맥주>가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맥주 생산은 하지 않고 판매만 했습니다.

◇윤: 일본이 대륙침략에 본격적으로 나선 1931년, 중일전쟁을 벌이고 군수물자를 생산하면서 1933년에 우리나라에 일본의 <대일본맥주>가 <조선맥주>를 설립하고, 같은 해 <기린맥주>도 <동양맥주>를 설립하면서 맥주 생산을 시작합니다. 이후, <조선맥주>에서 <크라운맥주>를 출시하고, <동양맥주>는 우리가 잘 아는 <OB맥주>로 바뀌었죠.

그런데 일본이 맥주를 생산하게 된 상황은 유럽, 미국하고는 좀 다릅니다. 일본도 함포외교로 개항한 역사가 있는데, 일본이 개항하던 시기는 전 세계가 제국주의 열강시대로 전환되던 때였어요. 그때, 일본은 러시아의 남진 정책 때문에 러시아를 고위험 세력으로 견제했습니다. 그 남진 정책에 대항하면서 일본 맥주가 출발했죠.

러시아는 17세기부터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남진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원래는 북해로 진출하기 위해 스웨덴과 싸웠지만 스웨덴이 밀리지 않아서 북해로 나가는 통로 일부를 확보하지 못했고, 그러면서 18세기에 방향을 돌려 크림전쟁을 통해 지중해로 진출합니다. 크림전쟁에서 승리해 지금의 우크라이나를 편입했고, 계속해서 아시아 대륙의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 쪽을 확보하기 위해 내려오다, 러시아의 남진을 방어하려는 영국과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1885년 거문도 사건이죠.

삿포로맥주 (출처: 삿포로맥주 공식 인스타그램)

◇윤: 영국뿐 아니라 일본도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사할린과 지금의 훗카이도 지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19세기까지만 해도 지금의 혼슈까지만 일본 땅이었으니, 한마디로 일본도 북진정책을 편 거죠. 그때, 훗카이도로 건너가라고 이주정책을 펴는데 이주를 시키려면 산업이 있어야 하니까 훗카이도 중심도시인 삿포로에 <삿포로맥주>를 설립합니다.

당시 북진정책의 상징이던 붉은 별은 지금도 <삿포로 맥주>에 그려져 있죠! 일본어로 ‘빨갛다’가 ‘아카이’인데, 일본사람들은 이 <삿포로 맥주>를 ‘아카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오랜 전통인 거죠. 이 훗카이도, 북해도 쪽은 빙산이 떠다니는 추운 고장이라, 저온 공법의 라거 맥주를 생산하기 쉬웠고, 그렇게 일본에 라거가 정착해 우리나라로 넘어온 겁니다.

원래 일본에도 다양한 맥주회사가 있었는데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관 주도하에 통합돼요. <대일본맥주>라고 우리가 흔히 아는 <오사카 맥주(아사히)>나 <일본 맥주(에비스)>가 <삿포로 맥주>와 통합되었고, 재벌이 운영하던 <기린맥주>만 독립된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나라에 <대일본맥주>가 <조선맥주>를, <기린맥주>가 <동양맥주>를 설립한 것입니다.

총정리하면, 일본의 <기린맥주>가 <동양맥주>를 거쳐 지금의 <OB맥주>에 이르고, <대일본맥주>가 <조선맥주>를 거쳐 <크라운맥주> 이후 <하이트맥주>로 이어지는 발달사를 보입니다.

개항로 라거 (출처: 인천맥주 인스타그램)

◎이: 확실히 이번에 인천에서 만들어 출시한 <개항로 맥주>에는 상징성이 있네요! 강화도조약으로 맥주가 처음 들어올 때, 인천으로 들어왔을 테니까요.

◇윤: 거기가 바로 개항장, 개항로죠.

◎이: <개항로 맥주> 이창길 대장님은 많은 맥주 중 라거를 선택해 만든 이유가 지역성으로 공감을 끌어내면서도, 누구나 대중적으로 편하게 접근해서 마실 수 있는 지역 맥주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하셨거든요.

◇윤: ‘개항로 맥주’는 맛이 보편적이면서도 달랐어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지금은 없는 <크라운맥주> 맛을 상기시켰습니다.

현재 라거 맥주 씬이 ‘카스’, ‘테라’로 양분된 분위기다 보니, “‘카스’도, ‘테라’도 아닌 라거 맥주라면 뭘까?”, “‘개항로 프로젝트’가 워낙 레트로를 잘 재현하니 혹시나 <크라운맥주>를 오마주한 건 아닐까?” 넘겨짚어서 “<크라운맥주>를 다시 만든 것이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그런 맥주가 있었냐?”고 답하시더라고요.

물론 <크라운맥주>는 전설의 맥주니 제가 맛을 알 길은 없죠. 하지만 검색해보면 “<OB맥주>에 비해 톡 쏘는 맛이 나고 씁쓸했다”는 표현이 많습니다. 보통 홉이 들어가면 그런 맛이 나죠. 기존의 <OB맥주>와 비교해 독특한 맛을 살리려고 시도한 것 같은데, 어르신들이 “<OB맥주>에 비해 맛이 없다”고 많이 표현하신 듯합니다.

이 <크라운맥주>는 나중에 지금의 <하이트맥주>로 바뀌어요. 사람들의 성원에 힘입어 2015년에 한 번 <크라운맥주> 특별판이 나왔었죠.

◎이: 더 씁쓸한 맛의 라거였나 보네요?

◇윤: 네. 우리나라 맥주 시장은 90년대 초까지는 <OB맥주>와 <크라운맥주>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식당점유율을 보면 55대 45로 <OB맥주>에 비해 <크라운맥주>가 뒤처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1988년도에 올림픽이 열리면서 사람들의 소비문화가 활성화됐고,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용어와 함께 새로운 커피 문화가 등장했습니다. 지금은 ‘커피믹스’ 하면 ‘맥심’이 떠오르죠? 그런데 우리나라 커피믹스의 원조는 <맥스웰하우스>입니다. 지금 다시 시판되고 있는데, 전에는 커피, 프림, 설탕을 두 스푼씩 넣어 다방커피로 팔았고, 여기에 비율을 약간 조정하고 설탕을 빼면 라떼가 됐죠.

아인슈패너 (출처: 나무위키)

◇윤: 요즘 많이 마시는 아인슈페너는 위에 생크림을 올리잖아요? 당시에는 생크림이 들어간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크게 떠서 올렸다고 합니다. 당시 ‘비엔나커피’가 “비엔나에서는 더러 아인슈페너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먹기도 한다더라!”라며 들어오던 때였거든요. 커피 브랜드도 다변화되었죠.

◎이: 맛있었겠는데요?

◇윤: 커피를 통해 등장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맥주 문화에서도 등장하는데, 그때 일본 맥주계는 ‘드라이 전쟁’이라고 ‘아사히 슈퍼드라이’ 열풍에서 시작해 너도나도 ‘슈퍼드라이’ 맥주를 출시하는 것으로 판도가 바뀌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올림픽 때 ‘슈퍼드라이’가 잠깐 상륙했는데 이는 <OB맥주>와 <크라운맥주> 사이의 점유율 전쟁과 관련 있습니다. 두 브랜드가 어떻게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을지 고민하면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는데요.

첫 번째 사건은 <크라운맥주>가 마케팅 대변혁을 시도한 겁니다. 아예 <하이트맥주>라는 브랜드로 다시 시작해요. 유튜브에서 ‘하이트 맥주 광고’를 검색하면 갑자기 “뻥!” 하고 폭포수처럼 맥주가 터져 날아가면서 “지하 150m, 그 깊은 곳에서부터 온다, 하이트!”라고 말하는 광고가 나와요. “100% 암반천연수로 만들어 순수하고 시원하고 맛이 좋다”라며 라거의 특징을 강조하죠.

재미있는 건 당시 <OB맥주>는 <하이트맥주>의 150m보다 더 깊은 암반에서 끌어올린 물로 맥주를 만들었다는 거예요. 더 좋은 물을 쓰고 있었는데, <하이트맥주>가 “150m 암반천연수”라는 단어를 사용해 “좋은 물로 만든 시원한 맥주”라는 인상을 더 부각한 것이죠. 여기에 더해 “시원할 때 맛있다!”로 마케팅을 이어가면서 라벨지에 인쇄한 로고가 시원해지면 색깔이 더 선명하게 바뀌도록 인쇄공법도 동원해요. 사람들이 맥주를 시원하게 즐기도록 만든 거예요. 그때부터 모든 술이 냉장고에 보관된 겁니다. 원래는 여름에만 냉장고에 보관했고, 보통은 그늘진 곳에 쌓아놨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가져다줬거든요.

◇윤: 두 번째 사건은 1991년 두산그룹의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에 분노한 소비자들이 두산그룹 소유의 <OB맥주>를 사서 깨거나 하수구에 쏟아붓는 등의 퍼포먼스를 한 것인데요. 그때 <하이트맥주>가 <OB맥주>를 누르면서 “‘맥주’ 하면 하이트!” 식의 이미지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렇게 두 브랜드 간의 경쟁에서 <하이트맥주> 쪽으로 세력이 기우는 듯 보였는데, 갑자기 맥주 시장을 탐내던 <진로>가 ‘카스’를 출시하면서 제3세력으로 등장했죠. 지금은 사람들이 식당에서 흔하게 ‘카스’를 접하지만, 1994년에는 ‘카스’가 지금의 크래프트비어 같은 희귀한 맥주였습니다. 마트나 편의점에는 없고, 몇몇 힙한 음식점, 술집에만 있는 상태로 시작했죠.

●김: 힙한 맥주였군요!

◇윤: 네. 당시 ‘카스’의 마케팅 타깃은 ‘여피족’이었습니다. 지금의 X세대 전신으로 문화적 취향을 추구하는 세대, 취하려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게 아닌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맥주를 즐긴 사람들이었죠. 당시 기준 연봉 3~4천 정도의, 지금으로 따지면 5~7천 사이의 중산층이었습니다.

전문직 종사자로, 회사에서는 과장, 차장, 부장의 중간관리자들이었는데요. 특징이 집에서도 와이프와 함께 맥주 한잔을 즐겼다는 것이죠. 당시 가정 내 맥주 문화는 한 집안의 아버지가 식사하다 “술 없나?” 하면 어머니가 가지고 와서 따라주는 형태였는데, 여피족들은 아내와 같이 술을 즐겨서, 여성이 마시기 편한 부드럽고 도수가 낮은 맥주를 선호했다고 해요.

‘카스’가 참 잘한 건, 메인스트림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 회식할 때, 회사 간부가 “김 과장이 시켜보지?” 하면 그 김 과장이 “카스 주세요”라고 말하게끔 만들었다는 거죠. 즉, 더 윗세대나 젊은 세대에게 카스를 전파하는 앰배서더 역할을 시킨 겁니다. 그때 시작된 ‘카스’ 열풍이 이어져서 지금은 ‘카스’가 우리나라 맥주의 주류처럼 보이는 거죠.

물론 <OB맥주>도 반격을 위해 광고를 찍었는데, 역시 유튜브에서 찾을 수 있어요. 박중훈 씨가 라거를 설명하기 위해 “랄라라~”라는 콧노래를 부르며 “라거 주세요!” 하며 트위스트를 춥니다. <OB맥주는> 그러면서 서서히 약세를 만회하는 형태로 왔죠.

‘카스’ 맥주는 마케팅을 잘하면서 인기도 커졌지만, 결국은 모기업인 <진로>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OB맥주>에 인수됐습니다. 그렇게 3대 세력이 다시 2대 세력으로 통합되면서 결국 <동양맥주>와 <조선맥주>가 전신인 <OB맥주>와 <하이트맥주> 두 가지가 주류로 남은 겁니다. <하이트맥주>는 하이트 열풍이 끝난 지금은 ‘테라’라는 브랜드로 계속 소비자층을 공략하고 있죠. 현재 우리나라 인더스트리얼계의 맥주는 ‘카스’, ‘테라’가 양대산맥입니다.

이번에 인천에서 출시된 <개항로 맥주> 이야기가 옛 <크라운맥주> 이야기까지 이어졌네요.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로컬 맥주

●김: 아까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의 중산층 여피족 이야기도 하셨지만, 미국 역시 ‘보보스족’이라고, 중산층 정도의 일정한 소득수준을 가졌으면서 진보적인 움직임을 이끈 세력들이 크래프트비어를 많이 소비하고 유행시켰다고 해요.

시작은 보헤미안이었지만, 80년대에 가서 “자본주의를 추구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은 히피에 가까운 사람들”로 주류가 바뀌면서 ‘보보스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소비하는 물건과 이미지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해 확립해나가는 세대들이었다고 해요.

브루어리가 지역 맥주와 그 지역의 문화를 차용하는 것이 ‘보보스족’의 소비 패턴과 일치하면서 미국의 크래프트비어 문화도 확 성장했다고 합니다. 역사나 세대에 따라 라이프스타일과 소비문화도 많이 바뀌는데, 미국에서도 비슷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재미있네요!

◎이: 취재차 갔던 탭하우스 <F64>의 변성진 대표님도 “로컬은 문화”라고 정의하셨죠.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김: 제가 브런치에서 로컬 문화, 로컬 브루어리 관련 글을 검색하다가 ‘한국맥주문화협회 칼럼니스트’ 윤한샘이라는 분이 “로컬문화가 왜 로컬맥주에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쓰신 글을 봤는데 잠깐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한국 수제맥주는 기존의 산업들이 어떻게 정착했고 성장했는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맥주를 통해 지역공동체와 연대하고 사회문화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맥주라는 카테고리를 문화적 영역으로 엮는 업계 간의 암묵적인 문화 카르텔도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맥주 생산자들이 문화적 창조자로 거듭나야 한다.”

저는 이 글을 “브루어리가 지역사회와 연대해 공동체도 형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로컬문화와 연대할 때 지역의 브루어리가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라고 해석했거든요. 마지막에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적 창조자로 거듭나야 한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저희가 매일 이야기하는 로컬크리에이터의 정신과 가장 잘 맞닿아있다고 생각했어요.

‘문화적 창조자’라는 표현이 무언가를 새로 이끌어나가는 사람의 모습이라면 로컬 브루어리가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맥주 문화가 바로 <비로컬>이 말하는 “하고 싶은 일을 살고 싶은 곳에서 한다”는 로컬크리에이터의 정신을 잘 반영하는 움직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대부분의 로컬 브루어리는 맥주 생산만 하는 게 아니라, 맥주 문화를 전파하면서 동시에 지역 문화를 만들어내려고 많이 노력하고 계셨어요. <크래프트루트> 윤수구 본부장님은 “맥주 스스로를 로컬 브루어리라고 부르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문화 콘텐츠가 중요하다”고도 말씀하셨는데요. 그래서 “비어 샤워”라는 맥주 축제와 “B급 영화제”도 진행하셨죠.

●김: 맥주 문화가 이벤트를 통해 지역사회를 넘어 세계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독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약 2주간 열리는 “옥토버페스트”라는 맥주 축제는 2017년 기준 맥주만 7천 5백만 리터를 소비했고, 총 방문객은 6천 2백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9월 중순부터 10월 1일까지 열리는데, ‘옥토버페스트’가 독일어로 ‘10월’을 뜻해요. 뮌헨산 맥주만 판매하는데, ‘아우구스티너브로이, 호프브로이, 슈파텐브로이, 하커프쇼르, 파울라너, 뢰벤브로이’ 6개 브루어리의 맥주입니다.

이 축제의 기원은 두 가지 설로 나뉩니다. 첫 번째 설은 3월에 만든 맥주를 10월에 먹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입니다. 지난 방송에서 뮌헨은 이미 16세기 때 라거 계열 맥주를 유행시켰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낮은 온도에서 발효해야 하니 여름엔 양조가 어려웠죠. 살균기술과 보관기술도 발달이 안 되어있으니 봄에 도수 높은 맥주를 만들어서 아끼고 아끼면서 여름을 지난 거예요. 그러다 보면 맥주가 많이 남으니까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하다가 10월에 함께 마시는 ‘메르첸’이라는 맥주가 생겨났다고 해요. 그때 “이 맥주를 다 털어먹어야겠다!”라며 거대한 축제가 열렸고, 이것을 ‘옥토버페스트’라고 명명했다는 설이 첫 번째에요.

●김: 두 번째 설은 1810년에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왕자가 인접 국가 작센의 공주와 결혼했는데 왕자가 스포츠를 너무 좋아해서 결혼식에서 경마대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 경마대회가 열린 장소가 지금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테레지엔비제(Theresien Wiese)였다고 해요.

루트비히의 아버지가 아들의 결혼식을 축하하면서 뮌헨의 4개 지역에서 나는 맥주와 음식을 나눠줬는데, 이것이 1819년에 매년 열리는 축제로 전환됐다는 설이죠.

역사와 문화적 맥락이 맥주 축제로 발전해 지금은 전 세계 사람이 소통하는 장이 되었다는 점이 인상 깊은 것 같아요.

◎이: 우리나라는 이제 막 크래프트비어 문화가 생기는 중이어서 아직은 규모나 의미가 더 발전해야 할 듯합니다. 탭하우스 <F64> 변성진 대표님도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비어 축제 중에 정말로 로컬을 담는 곳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도 하셨거든요.

부산 <와일드웨이브>의 김관열 대표님도 “각 브루어리가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게 중요하고, 자신들이 만드는 맥주가 지역에서 어떤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를 계속 표현해나가서 로컬맥주 문화가 진짜 발전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외국은 일상에 맥주 문화가 녹아있잖아요? 저희가 취재한 <고릴라브루잉>의 두 대표님은 영국분이신데 크래프트비어가 “퇴근하면서 한잔, 강아지 산책시키면서 한잔” 하는 식으로 생활 곳곳에 녹아있다면서 생활문화로서의 크래프트비어에 대한 인식을 한국에 가져오셨죠.

●김: 영국의 경우, 에일이 발달한 국가답게 맥주 문화가 잘 자리 잡고 있고, 펍 문화의 뿌리가 깊습니다. 퇴근길에 술 한잔하며 모르는 사람과 만나서 한두 마디 나누고 들어가는,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지역사회의 사랑방 역할을 하니까요.

특히 영국은 축구가 발달해서 펍이 관람문화와 함께 더 지역사회에서 사람 모으는 역할을 잘하는데, 우리나라는 이제 발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브루어리가 펍과 동시에 지역의 사랑방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동시에 한국만의 크래프트비어 문화의 발달상도 고민하는 일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윤: 우리나라 로컬에도 아주 유명하게 알려지진 않았어도 맥주 축제가 열리거나 로컬 축제에 로컬 브루어리가 함께하면서 축제 분위기가 종종 형성되는 예는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분위기가 성숙할 때쯤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이 생겨, 지역축제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고 있는데요. 지난 회 <GMEG> 이해정 대표님과의 대담에서도 언급했지만, 올해 열리는 3회 “키벡스”는 꼭 페스티벌 현장에 오지 않아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전시회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또,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 미리 주문한 맥주를 현장에서 수령하는 행사도 준비 중인데요. 저는 5월 제3회 “키벡스”에서 온오프라인이 함께하는 새로운 맥주 페스티벌이 펼쳐지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저희 <비로컬>이 “키벡스”의 미디어파트너로 현장에서 취재도 하고, 많은 로컬브루어리도 만날 예정입니다.

이제 1, 2월간 진행한 맥주특집을 마무리 지어보려고 합니다! 다들 어떠셨나요?

◎이: 새로운 이야기가 많아서 재미있었어요. 저희가 처음에 로컬맥주 특집을 시작할 때는 “크래프트 정신이 뭐냐?”에 대해 토론하다가 “결국 저항정신이 아니냐?”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막상 취재를 해보니 그렇게만 정의하기에는 각자가 가진 고유한 생각들이 다르더라고요. 바로 그 다르다는 지점, 다양성이 흥미로웠어요. 결국, 로컬 문화를 얘기할 때는 지역성에 국한된 개념보다는 세계관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김: 외국의 맥주 문화는 예전부터 양조장과 함께 발달해온 역사가 길고 고유한 문화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새롭고 낯선 문화로 인식되는데, 낯선 문화가 정착하는 데는 다양한 문화적 적응과 융화 과정이 필요하죠. 저는 지금의 국내 로컬 브루어리가 젊은 사람과 지역이 소통하는 자리로서 그 장을 마련해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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