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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혁주
  • 인투더로컬
  • 입력 2021.06.24 12:17
  • 수정 2022.05.16 23:24

[인투더로컬(7)]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표

in KIBEX 2021

 

 

<개항로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이창길입니다.

<개항로프로젝트>는 인천 중구에서 역할이 끝난 건축물에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시공하고, 운영하고 있는 도시재생 업체들을 말합니다. 저희는 이 프로젝트를 3년 정도 해왔고요. <개항면>, <라이트하우스>, <개항로통닭> 등 총 15개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님과 술을 한 잔 하면서 “인천을 대표하는 인천 맥주가 필요하지 않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박 대표님도 지역을 대표하는 맥주 생각을 계속 하고 계셨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의기투합 해서 맥주를 만들게 됐습니다.

저희가 맥주 만들 때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지역 맥주의 정의가 무엇인가?”입니다. 지역 맥주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인천의 지역맥주란 무엇인지' 저희만의 정의를 내려야 했고 가장 오래 걸리고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정의는 “지역 맥주란, 지역성을 포함한 공감할 수 있는 술”입니다. 저희의 슬로건이 되었죠.

<개항로프로젝트>를 할 때는 항상 아주 작은 기획이어도 한 문장을 정해두고 시작합니다. 그래야 주제가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스스로 그 문장을 보며 다짐도 할 수 있죠.

‘개항로 맥주’를 만들 때 저희의 다짐은 “지역성을 포함한 공감할 수 있는 술”이었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술을 제안하기 위해서 저희는 맥주병 사이즈를 500ml로 만들었어요. 동네 어른들은 500ml 병맥주에 익숙한데 330ml가 나가면 좀 서운하실 것 같았거든요.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술을 생각했기 때문에, 병 사이즈를 ‘카스’와 ‘테라’에 맞추어 제작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에일이 아닌 라거를 선택했어요. 보통 수제맥주라고 하면 크래프트정신을 담아 좀 더 근본적인 맥주를 만들고자 하는데, 저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술”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에 누구나 보편적으로 마실 수 있는 라거를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카스’와 ‘테라’가 제일 많이 마시듯이 영국, 일본, 미국, 중국에서도 라거가 가장 유행하고 있거든요.

저희는 ‘개항로 맥주’에 지역성을 강조하고 싶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부분을 디자인에 반영했는데요. <전원공예사>에서 60년 넘게 목간판을 만들고 계신 어르신께 ‘개항로’라는 글씨를 직접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만약 저희가 ‘개항로’ 글씨체를 ‘배민체’로 했다면 누구나 저희를 따라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레트로가 되었겠죠. 그런데 85세인 노포 어르신이 직접 글씨를 써주셨기 때문에 레트로가 아닌 클래식이 된 거죠.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개항로만의 글귀잖아요.

‘테라’는 배우 공유가 모델이고 ‘개항로 맥주’는 노포 어르신이 모델입니다. 과거 개항로 주변에는 종로보다도 극장이 훨씬 많았는데요. 이분은 과거 극장의 간판을 그리시던 분이에요. 현재는 페인트 가게를 운영하면서 벽화도 그리시고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데요.

지역성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해서 “우리의 공유가 되어주세요”라고 모델 제안을 드렸죠. 지금 개항로에 오시면 온 동네에 이 분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동네 어른들끼리 모이면 “아, 저 친구는 어딜 가나 다 있네!” 하며 가시기도 하고, 이 포스터를 통해 지역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작지만 지역의 축제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전시도 했는데요. 전시장에 있는 글들은 왼쪽은 제가, 오른쪽은 박 대표님이 썼습니다. 이런 글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저희가 지역 맥주에 대해서 ‘지역성을 포함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술’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왼쪽 글은 초등학교 4학년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서 썼습니다. 박 대표님이 쓴 오른쪽 글은 (맥주를 좋아하는) 전문가들이 봤을 때 필요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보여주었습니다.

‘개항로 맥주’ 디자인, 맛, 병, 전시까지도 하나의 슬로건 아래 일맥상통 해야 브랜딩에 관한 메시지를 정확하게 던질 수 있습니다.

인천은 기념품이 없습니다. 기념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저희는 ‘개항로 맥주’를 예쁘게 디자인 해서 포장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천 개 가량이 며칠만에 다 소진된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선물로 사가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는 “아, 이 맥주 패키지를 맥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기념품으로 인식하는구나” 하고 철저하게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이후 저희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일본이나 영국이나 어떤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천안 호두과자”는 과연 천안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개항로 맥주’는 인천에서만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Only Incheon Drink Local'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그랬더니 “그게 뭔데?” 하며 타 지역 사람들이 ‘개항로 맥주’를 맛보러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개항로에는 관광이라는 키워드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는 노포에 가서 영업을 합니다. 60년 된 다방에도 입점 요청을 드려요.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은 5~60대 어르신들도 마시는 보편적인 술이 되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구보다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실 수 있는 사람이지만, 맥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기획에 재능이 있었고 <인천맥주>의 대표님을 만나 협업을 통해 ‘개항로 맥주’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이 잘한다고 해서 잘 되는 시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과 협업을 하면 훨씬 더 잘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천맥주>라는 전문가와 <개항로프로젝트> 기획자가 만나서 맥주를 만든 것 처럼요. 그래서 저는 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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