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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지속가능성(1)] 지역가치창업② 촘촘한 감각으로 자유도를 찾는 사람들

지역가치창업 두 번째 이야기 - 공주 퍼즐랩

최근 5년간 지역의 가치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시선과 방식으로 활기를 더하는 지역가치창업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이에 이번 특집은‘키워드로 보는 지역가치창업 생태계’라는 주제를 정했다.

지역의 창업가, 창업가를 지원하는 기업, 일본의 사례 소개 이 세 가지 카테고리를 통해 지역가치 창업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참고할 만한 핵심 키워드를 뽑아보았다. 키워드의 의미는 지역창업에 관여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직면하고 있는‘현장’의 고민 혹은 가치를 담고 있다. 플레이어들과의 인터뷰, 전국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일본 사례 등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지역창업을 위한 생태계를 만드는데 있어 실질적인 조언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특집을 통해 수많은 지역의 플레이어들이 인사이트를 얻어 자신만의 키워드들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청년들의 아지트가 되어주고 있는 공유 스페이스 '업스테어스' (사진: BELOCAL 이상현 에디터)
청년들의 아지트가 되어주고 있는 공유 스페이스 '업스테어스' (사진: BELOCAL 이상현 에디터)

날 궂은 어느 날, 어두운 공주의 밤길을 지나서 찾아간 주식회사 <퍼즐랩(PuzzleLab)> 사무실은 바깥 날씨와 다르게 무척 푸근한 분위기였다. 곳곳에 분주한 작업의 흔적이 있었지만, 왠지 강도 높아 보이는 작업의 흔적과는 또 다른 차분한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두 사람, 권오상 대표(이하 오상님, 실제로 퍼즐랩에서 부르는 호칭)와 이병성 이사(이하 병성님)는 궂은 날이건 밝은 날이건 항상 쿵짝이 잘 맞는 유쾌한 만담가들 같았다. 거의 속사포에 가까운 유머를 구사하는 두 사람 때문에 이야기하는 내내 정신없이 웃다가 인터뷰의 목적을 잊을 정도였다.

오상님은 2018년 8월 봉황재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시작으로 지난 3년간 차근차근 여러 계획을 실천하면서 최근에는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사업도 주변 단체와 컨소시엄으로 수주했다. 겉으로 보면 ‘한옥게스트하우스에서 마을호텔로 사업을 확장해 정부 사업인 청년마을까지 하게 되었구나’ 하고 간단하게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의 흐름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고민의 과정이 있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민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공주, 청년, 창업, 커뮤니티를 이해할 수 있는 고유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공주에서 청년마을 '자유도'를 운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퍼즐랩> 권오상 대표. 공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해주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사진: BELOCAL 장군 에디터)
공주에서 청년마을 '자유도'를 운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퍼즐랩> 권오상 대표. 공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해주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 (사진: BELOCAL 장군 에디터)

◆‘자유도(Degree of Freedom)’와 다양한 모임들, 그래서 사람

시작은 사람이었다. 최대한 각자의 취향과 필요에 맞는 모임을 만들어나가는데 주력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서점 주인이 구심점인 영화 모임, 체육 선생님이 주도하는 달리기 모임, 만년필 모임, 그림 모임, 북클럽 등이 진행됐다.

2020년까지 다양한 테마형 모임을 만들었더니 흐름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참여자 스스로 또 다른 파생모임을 만들면서 자가발전하게 되었다. 공주에서 만들어지는 테마형 모임의 특징은 ‘테마’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친목을 강제로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테마에만 집중하는 것이 지속 성공 요인이다.

이를 통해 누가 만들어주거나 매칭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모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됐다. 영화를 보든, 달리기를 하든, 구심점 한 명 정도가 강하게 밀어붙이면 둘이든 셋이든 모임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모임에는 주민들도 참여한다.

“대도시에는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그때그때 모여서 느슨하게 연대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걸 지역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갈 수 있는 커뮤니티를 유지할 수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유별나게 모임이 많은 곳. 그 모임이 언제나 자유롭게 형성되어 그 특징을 ‘자유도’라는 슬로건으로 붙이는 곳. 퍼즐랩의 첫 번째 키워드다. ‘자유도’는 자유의 ‘정도’(degree)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각각의 모임이나 그 사람 자체를 독자적인 섬처럼 비유한 자유‘도’(island)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게 자유롭게 체험을 하고 만남을 만들어가다 보니 프로그램의 성격도 자유롭게 구성된다. 4박 5일간 지내기만 하는 ‘로그인 공주’ 프로그램에는 운영진의 개입 없이 공유사무실, 숙소, 공유자전거 정도만 지원한다.

‘두런두런 공로드’는 2박 3일간 주제에 집중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하루 종일 할 정도로 집약도가 높은데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밤새고 준비하여 서로 논평하고 발표한다.

인근의 전시 공간 ‘크림(Cream)’에서는 공주에서 활동한 플레이어들의 인터뷰 영상이나 녹취록을 상설전시처럼 관람할 수 있다. 기록 중에는 ‘나의 자유도는 몇 %인 것 같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공주를 체험하고 공주에서 활동하면서 본인 자유의 정도에 대해 성찰해보는 것이다.

공주 제민천 근처 골목에는 언뜻 봐서는 지나칠 수도 있는, 숨어있는 장소들이 많다. (사진: BELOCAL 이상현 에디터)
공주 제민천 근처 골목에는 언뜻 봐서는 지나칠 수도 있는, 숨어있는 장소들이 많다. (사진: BELOCAL 이상현 에디터)

◆주민과의 공존

지역에서 활동한다고 해서 플레이어 모두가 주민과의 공존이 언제나 핵심 가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주자라면 특히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이 주민과의 소통일 수 있고, 토박이 청년도 세대 차이를 느끼며 다가가기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중요한 또 하나의 플레이어는 지역 주민이다.

“우리는 청년과 주민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청년들이 왔으니 안녕하세요하며 소개하는 상견례는 하지 않는다. ‘인사하고 소개했으니까 다했다’라는 방식으로 가지 않으려는 것이다.”

인사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민을 대상화시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공주이기 때문에 온다기 보다는 그냥 이 마을의 분위기나 프로그램의 특성을 보고 혹은 포스터의 느낌을 보고 온다. 청년들은 이미지의 느낌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역창업자나 사업주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에 대한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온다.”

<퍼즐랩>은 플랫폼을 만들고 그 안에서 모두가 어우러질 수 있게끔 한다. 혹여 주민들이 낯선 청년들의 유입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말한다면 그건 플랫폼 운영자인 <퍼즐랩>에 말하도록 하고 청년 개개인에게 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물론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의 방식대로 청년들과 같이 해결한다. 이러한 작은 디테일이 프로그램을 통해 공주를 방문한 참여자들의 활동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자유도'를 통해 공주에 방문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는 전시관 '크림' (사진: BELOCAL 장군 에디터)
'자유도'를 통해 공주에 방문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는 전시관 '크림' (사진: BELOCAL 장군 에디터)

◆“먼저 사례를 보여드립니다”

많은 지역가치창업자들은 사업계획서 구성을 어려워한다. 사업 발주처인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사업계획서 양식은 초보자가 채우기 어려운 용어와 항목으로 가득 차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아이디어?사업구상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글로 바꾸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려움을 줄이고 사업을 수주했던 <퍼즐랩>의 비결은 사업 수주 이전에 이미 자주 진행해온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즉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를 강조하기 보다는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돌려본 결과 이런 이런 점이 더 가능하다’라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어떨 때는 <퍼즐랩>이 진행한 프로그램이 반영된 정부 사업이 신설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퍼즐랩>의 시도에는 ‘사전 준비’가 유독 많다. 2박 3일이든, 4박 5일이든 1주일이든 한 달이든 할 수 있는 모든 프로그램을 미리 돌려보고 장단점과 특징을 파악해 본 사업으로 더 크게 더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온라인에) 꾸준히 단기?장기 프로그램을 노출하는데, 결과로서 운영성과를 올리기 보다는 ‘이 마을이 되게 멋져 보이네’라고 느끼게끔 올린다. 참여자들도 직접 게시물을 올리고 있어서 제민천이라는 이 마을이 하나의 색깔이 아니라 다양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걸 보는 사람들은 흥미를 느껴 오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맛보기 프로그램인 ‘로그인 공주’는 4박 5일을 진행해왔는데 이미 8기를 시행했다. 그 결과 입소문이 나면서 10명 남짓 선정하는 규모에 50명이 응모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3기에 접어든 ‘소도시 모험로그’ 프로그램은 10명을 선정하는데 67명이 지원했다.

아이디어와 계획만으로 사업에 진입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이전부터 실행해온 사업을 공식화하는 기분으로 사업에 지원하다보니 좀 더 탄탄한 프로그램 운영력을 키우게 됐다. 청년마을 사업도 그렇게 진입했다.

공주를 찾는 청년들이 많아지자 새로운 공유공간 '금강관'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BELOCAL 이상현 에디터)
공주를 찾는 청년들이 많아지자 새로운 공유공간 '금강관'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BELOCAL 이상현 에디터)

◆관계안내소, 사람과 자원을 소개하는 인프라 플랫폼

처음에 만나면서부터 느낀 것이지만 오상님과 병성님은 타이트한 스타일이 아니다. 두 사람은 공주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직장인 북클럽에서 2년 동안 만나면서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했다. 이후 공주에 와서 일을 시작하면서도 그런 식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지역가치창업을 시작했다고 하면 불타는 의지와 딱 부러지는 목표와 원대한 포부를 가져야 한다는 기대가 따라붙곤 한다. 그래야 살아남기 어려운 지역 생태계에서 발자취라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런 기대는 플레이어에게 엄청난 부담이 되곤 한다.

하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시간표대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방식이 됐다. 이제는 그런 방식으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에서 일했다는 두 사람은 그 의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퍼즐랩> 역시 인천 개항로처럼 느슨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다. 사무실에 꽉 찬 구성원의 사업 활동이라기보다는 지역의 다른 사업자들과의 연대, 지역주민과의 연결 등이 제대로 움직이게끔 받쳐주는 인프라 플랫폼 같은 역할을 한다.

“타 지역에 자리 잡을 때 필요한 연결은 정말 운이 좋았을 때 만들어질 수 있거나 스스로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는 그 우연을 설계해준다. 마치 타 지역이나 해외여행을 갔을 때 진짜 운이 좋아서 어떤 기회를 얻어서 주민들의 파티에 초대되는 등 생활영역까지 들어가는 식의 경험이 가능하도록 안내한다.”

<퍼즐랩>은 지역의 자원을 소개하고, 지역을 방문했을 때 만나면 좋을 사람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관계안내소’와 같다. 관계안내소는 특산물이나 관광지만 소개하는 관광안내소보다 더 많은 지역 정보와 더 유용한 활동을 소개하고 지역의 재미있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안내하며 지역우호인구를 만들 수 있다. 그저 머물다가는 관광보다는 체험하고 느끼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 ‘관계안내소’에 대한 개념은 <인구의 진화: 지역 소멸을 극복하는 관계인구 만들기>에서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다.

공주에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 <퍼즐랩> 이병성 이사. '와플학당'이라는 교육공간을 통해 다양한 모임들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연결점을 찾아내고 있다. (사진: BELOCAL 장군 에디터)
공주에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 <퍼즐랩> 이병성 이사. '와플학당'이라는 교육공간을 통해 다양한 모임들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연결점을 찾아내고 있다. (사진: BELOCAL 장군 에디터)

◆연쇄효과, ‘참가자에서 스태프로’

많은 지역가치창업자들은 지역의 가치에 관심이 있고, 이를 소중히 하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란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자주 자기가 활동하는 지역에 방문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사업의 가치창출 근거이자 존재이유이자 최종목표이기 때문이다.

<퍼즐랩>의 프로그램에도 그런 의미가 반영되어 있다. 재미있는 점은 파일럿을 포함해 이전에 진행했던 프로그램에 단순 참가자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다음 프로그램의 강사나 매니저 등 스태프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이런 연쇄효과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퍼즐랩>의 최종 목표는 200여 명 정도가 체류할 수 있는 연수원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활동의 결과물이 온전히 모두 그대로 기록되는 공간이자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교류의 장으로서 복합적인 성격의 큰 공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다.

“200명이 모이면 50명은 창업 공동체가 될 수도 있고, 30명은 교육공동체가 될 수 있다. 그런 부분을 계속 다양하게 만들고 기본적으로는 자유도라는 틀 안에서 열정 있고 책임감 있고 결이 맞는 사람들이 만났으면 한다.”

퍼즐랩이 활동하는 마을에 가면 크고 작은 모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꽉 찬 둥근 원의 모양처럼 자유도 360도의 가능성을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느낄 수 있다.

퍼즐랩이 지역 창업 생태계를 만드는데 참고하고 공부했다는 10권의 책 목록을 공유한다.

<마을의 진화>, <커뮤니티 디자인>, <손의 모험>,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 <시골 카페에서 경영을 찾다>, <홀라크라시>, <약한 연결>, <지적 자본론>, <공감하는 능력>, <도쿄R부동산 이렇게 일합니다>

*이 기획은 비로컬, 서강대학교 SSK지역재생연구팀, 더가능연구소가 함께 기획,취재,조사했다.

*이 기사는 더가능연구소 조희정 박사의 자문을 받았으며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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