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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혁주
  • 지난 연재
  • 입력 2020.01.14 23:00
  • 수정 2022.04.22 09:09

[로컬 리제너레이션(1)] 대한민국의 예술·공연·자유·문화집결지 대학로

문화적 도시재생 1번지: 대학로 ①편

마로니에 공원  (출처: 한국광광공사-김지호)

대한민국의 도시발전은 개발에서 재개발로, 이제는 도시재생이라는 포괄적 개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인구절벽과 더불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지방소멸, 공동화되어가는 원도심 문제... 문화적 도시재생이 도시재생의 핵심으로 떠오르며 해외 사례들을 우리 실정에 맞게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해외 사례를 찾기에 앞서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 전에 문화적 도시재생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곳은 바로 서울의 명소 ‘대학로’다. <로컬 리제너레이션> 연재를 시작하는 마당에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주제다. 앞으로 수회에 걸쳐 문화적 도시재생 1번지 ‘대학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대학로라는 이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동숭동 캠퍼스)에서 유래

먼저 대학로라는 이름이 붙여진 역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대학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교차로에서 혜화동로터리까지 잇는 도로를 칭한다. 과거 이곳에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이 도로의 이름을 ‘대학로’라 붙이게 되었다. 흔히 서울대학교 자리라고 말하지만 이곳에 대학이 들어선 건, 1926년 일제 강점기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이곳에 개교했고, 해방 이후인 1946년 8월에는 미군정에 의해 경성제국대학이 아닌 서울대학교로 재탄생하게 된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지금의 자리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터를 잡으며 문리대학이 신림동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그 빈자리에 현재의 마로니에 공원이 조성되었다. 이후 이곳을 드나들던 젊은 층과 유동인구를 위한 크고 작은 문화시설들이 하나 둘 들어서며 오늘날과 같은 대학로가 형성된 것이다.

대학로라는 명칭은 1966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로 쌍림동 106번지에서 혜화동로터리(혜화동 132)까지 2.53㎞의 구부러진 구간의 가로명이 제정된 데서 유래했다. 이후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가 거리 이름을 제정할 때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를 통해 종로5가 사거리를 기준으로 대학로의 구간을 줄여 남쪽 구간은 훈련원로(訓鍊院路)로 분리했다.

서울 종로구 동숭길 3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 정치투쟁 1번가에서 문화예술의 거리로...

대학로는 다양한 이슈를 지닌 주체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한 공간이었다. 각각 이슈에 해당하는 결과물을 창출함으로써 일종의 생태계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특히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거리라 불리지만, 대학로가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된 데는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들이 작용했다. 옛 조선시대에는 유생들이 울분을 토하던 거리였으며, 현대로 넘어오며 자유와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운동의 터전이 되었다. 4.19와 유신반대운동이 대학로를 중심으로 일어나기도 하였다.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는 군사 정권이라는 이미지 관리하는 차원에서 1985년 5월 4일자로 정부 주도로 대학로 일대에 ‘문화예술의 거리’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이전하고 마로니에 공원이 들어선 지 딱 10년을 채운 시점이다.

당시 교복자율화와 두발자유, 야간통행금지 해제, 여의도 국풍 축제, 프로야구 개막 등도 같은 맥락에서 시행되었다. 이때부터 대학로는 축제의 거리, 문화의 거리, 자유공간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던 문화단체와 극장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벌써 이 시기부터 대학로에 주말 축제 거리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문화적 조치가 취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정치적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지만, 대학로가 문화예술, 연극의 거리로 탈바꿈하도록 기여한 셈이다. 이후 20여년이 흘러 2004년에는 인사동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 ‘문화지구’로 지정되면서 서울의 문화를 대표하는 거리가 되었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故 이한열 추모대회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박용수)

◆ 다층 레이어 형태의 문화구조를 갖고 있는 대학로

현재 대학로는 ①교육의 거리, ②문화의 거리, ③젊음의 거리로 불리고 있다. 그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각각의 이유가 존재한다.

① 교육의 거리

조선 시대에는 조선의 고등교육기관인 성균관이 이곳에 있었다. 이후 일제도 경성제국대학을 이곳에 설립했고, 경성제국대학은 해방 후 서울대학교로 재탄생했다. 현재는 홍익대, 상명대, 서울여대, 성균관대, 한국방송통신대, 가톨릭대의 단과 대학들(특히 문화·예술 분야)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② 문화의 거리

1981년 주로 신촌에 많던 공연장들이 대학로로 이전해 오기 시작한다. 1985년부터는 ‘대학로’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거리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한국의 현대 미술, 음악, 연극 등 예술 활동의 중심지이다.

③ 젊음의 거리

젊음의 거리가 시작된 건 4.19 의거, 유신반대운동 시위와 집회 등 학생운동의 장으로 작용하면서 부터였다. 이후 공연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 젊은 층의 유입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발전의 이면에는 아쉬운 정치적 상황이 깔려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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