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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혁주
  • 인터뷰
  • 입력 2020.02.27 10:25
  • 수정 2022.05.16 22:56

퍼즐랩 권오상 대표, 원도심의 역사를 담은 마을 호텔의 꿈

로컬크리에이터를 찾아서(3) 충남 공주의 모던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

골목어귀에선 알아챌 수 없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봉황재 제공)

충남 공주에 있는 모던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 근처 봉황산이 있어 동네 이름도 봉황동에 위치했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지만 이곳을 한번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수 있다. <봉황재>는 외관만 봐서는 호텔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냥 동네 어귀의 오래된 집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문을 열면 아기자기한 마당, 고즈넉한 처마까지 이곳은 밖에서 본 곳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공주시는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원도심 일대에 한옥 신축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공주, 부여 익산 일대를 백제 문화권으로 지정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이래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이로 인해 이미 공주시내에 100호가 넘는 한옥이 지어졌다.

마을호텔을 지향하는 <봉황재>지만 많은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 건 아니다. 2인실 3개, 3인실 1개의 작은 규모. 하지만 <봉황재>는 새로 지은 건물들이 주는 깨끗함, 청결함과는 달리 향수를 자극하는 분위기를 살린 숙소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 레트로한 느낌이 있어 오래된 기억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방문객들을 초대한다.

<봉황재> 인근에 들어선 신축 한옥 (사진: beLocal)

권오상 대표는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뒤 경기관광공사에서 15년을 근무해왔다. 경기관광공사에서는 국내외 관광마케팅 분야 기획 업무를 맡았다. 흩어져 있는 관광지들을 연결해 관광 코스를 개발하는 일이다.

“관광지에는 좋은 식당, 숙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분들이 생업에 종사하시느라 주변의 미세한 자원들에는 관심이 적어요. 저는 이런 분들을 위해 인프라를 조성해주고 코스로 연결해 상품화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어요. 이때 했던 경험이 지금 사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이곳에 정착한건 단순히 <봉황재>가 예뻐서였다. 원래부터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참이었지만 <봉황재>에 왔다가 한 눈에 반했다. 딱 하루 고민을 마치고 그 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계약을 마친 후 거리를 둘러보던 그는 <봉황재> 주변에 있는 문화적 자원에 감탄했다. 이곳에서 마을호텔 프로젝트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다.

공주 원도심은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없는 60~70년대의 오래된 골목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6.25 이후,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며 발전해온 도심의 흔적이 건물에 많이 남아있다. 옛 흔적이 남은 거리 위에 각 시대를 풍미하는 개성있는 집들이 남아있어 거리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텃밭, 집주인의 특성을 고려한 집의 구조들은 얼기설기 재미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봉황재>에 비치된 다양한 골동품들. 데코레이션 소품을 위해 억지로 수집한 것이 아니라 원도심 주민들의 나눔을 통해 하나 둘 모아졌다. (봉황재 제공)

다행히 이곳 주민들은 토박이들이 많다. 보통 원도심 거주민들은 건물이 낙후되고 환경이 퇴화되면 새롭게 개발된 동네로 떠나거나 다른 도시로 이주한다. 자연스럽게 집값이 하락하며 원도심 거주민들의 빈 자리는 타 지역에서 온 이주민과 외국인들이 채우게 된다. 거리 분위기가 바뀌면서 때로는 슬럼가가 되기 마련.

하지만 <봉황재> 인근 원도심은 아직도 이곳을 지키는 토박이들이 많다. 방치된 빈 집들은 지자체가 나서 주차장이나 공원, 소규모 문화공원으로 만들어 오히려 재미난 풍경이 넘치는 골목을 만들어냈다. 또한 이곳은 오래 전부터 공주교대와 공주사대가 있어 하숙촌이 형성된 곳이라 외지인의 출입에 익숙하고 친절한 곳이다. 아직도 마을 어르신들은 골목 탐방을 위해 찾아온 청년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맞이한다.

공주에 숨어있는 역사 유적지 역시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커다란 문화적 자원이다. <봉황재>를 매입한 권오상 대표는 근처를 돌아보며 원도심이 지닌 매력을 깨달았다. 공주는 백제시대 때 수도로 쓰였던 역사부터 근현대사 뿐 아니라 백제시대 때부터 수천 년의 역사 담긴 곳이다. 최근 원도심이 활성화되며 골목마다 형성되고 있는 특색있는 가게들이 더해져 다양한 재미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거리가 형성되던 60~70년대의 풍습을 느끼게 하는 재미있는 조형물들이 골목어귀의 담장에서 반겨준다. (사진: beLocal)

권대표는 골목 자원과 공주의 문화를 활용해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재미있는 투어를 진행한다. <봉황재>는 단순히 숙소를 제공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원도심 도보 관광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코스도 여러갈래로 나뉜다. 봉황재 인근 골목을 돌아보는 골목투어, 공주 원도심 문화를 돌아보는 문화관광투어 등을 진행하며 다양한 욕구를 지닌 관광객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고 있다.

원래 <봉황재> 골목투어 프로그램은 투숙객에게 식당을 안내하기 위한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이 골목은 주택가로 조성된 데다 영업하는 가게라곤 오래된 세탁소 하나뿐이었다. 체크인하신 손님들에게 식사할 곳을 안내하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되며 프로그램이 점점 구체화되었다.

음식점까지는 5분 남짓한 거리지만, 권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여기저기 거닐다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나중엔 오랫동안 이 골목에 머무른 동네 주민이 된 듯 착각에 빠질 정도다. 그와 함께하는 골목투어는 실제로 골목에 사시는 어르신들의 사연을 전해 듣는데서 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여기는 언제 지어진 집인지, 그 곳에 사는 분들은 어떤 사연을 지니고 계시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 <봉황재> 인근의 골목들은 시민들의 역사를 간직한 살아있는 생활사 박물관처럼 다가온다.

백제시대 옛 절터. 지금은 5층 석탑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사진: beLocal)

“처음 시작할 때는 텃세가 있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마을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다보니 오히려 마을 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필요한 자료나 요긴한 물건들을 건네주시기도 하고, 마을을 잘 알고계시는 분들을 소개해주시기도 하셨죠.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였지만 지내다보니 마을 어르신들의 깊은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봉황재>를 찾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근현대 생활사나 공주 문화재를 소개하며 흥미를 이끌어주기도 한다. 숙소에 비치된 옛 물건들은 자연스럽게 전통을 경험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봉황재> 인근의 절터나 100년 전 세워진 교회 등 역사 문화 유적지를 발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옛 골목의 향수를 찾아 온 분들에게는 추억을 테마로 여행을 즐기도록 돕는다. 특히 <봉황재>에 들른 가족여행객들은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부모는 옛 추억을 회상하고, 자녀는 부모의 삶을 이해하며 서로 공감할 수 있어 특별함을 더할 수 있다.

역사가 숨쉬고 있는 원도심 골목투어 (봉황재 제공)

“대도시의 경우, 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추억을 회상하며 골목투어를 참여해도 재개발 때문에 옛 건물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도슨트의 설명이 덧붙여져도, 설명의 대부분을 상상을 통해 이해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곳은 달라요. 근현대사를 대변하는 건물들이 생생하게 남아있어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여지들이 훨씬 많죠. 한번은 1960년까지 이곳에 살았던 어르신이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오셨어요. 어릴 적 살았던 골목과 집들이 다 있다며 즐거워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과 옛 추억을 공유하는 행복한 시간을 가지셨어요.”

무엇보다도 뚜벅이 여행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여행지다. 커다란 주요 도로를 끼고 형성된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어느새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무엇보다도 동네의 규모가 작아 거닐다보면 금방 내 동네처럼 익숙해진다. 이 친숙한 매력 덕분에 <봉황재>를 거듭 찾는 손님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봉황재는 관광 컨시어지 역할까지 자처하고 있다. 공주는 부여, 군산, 전주 등 지방 주요 관광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위치해있다. 따라서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관광코스나 관광지를 추천해주기도 하고, 주요 먹거리를 권하기도 한다.

동네만의 로컬을 추천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오는 식당들을 추천받을 수 있다. 이는 서울이나 주요 도시의 ‘O리단길’과 같은 관광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성이다. 획일화되고 정돈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는 없지만, 주인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운영하는 개성있는 가게를 구경할 수 있다.

동네 사랑방 느낌의 독립서점 <가가책방> (사진: beLocal)

봉황재는 최근 근처의 여러 개의 점포들과 함께 ‘마을 호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가가책방>, <오거리 카츠>, <로리야>, <반죽동 247>과 함께 새로운 관광 코스를 개발 중이다. <오거리 카츠>와 <로리야>는 마을 호텔의 식당 역할을 한다. <반죽동 247>은 카페 공간으로, <가가책방>은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라운지 서비스 공간이 되어 준다. 역으로 서점기행을 위해 <가가책방>에 왔다가 <봉황재>에서 머무르는 손님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퍼즐랩>이라는 회사도 설립했다. 크고 작은 마을의 다양한 업체들을 퍼즐 조각처럼 맞춘다는 의미에서 <퍼즐랩>이라 이름 붙였다. 빈 집을 소유한 사람들과 투자자를 통해 건물의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마을 호텔로 만드는 마을 호텔 프렌차이즈화도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원도심을 활성화하는 민간차원의 도시재생 방안으로 작용되며, 주민들이 직접 적극적으로 사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계속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호텔은 많은 사람이 방문해 투숙할 때 수익이 생겨요. 식당, 카페 등 주변에 부대시설이 많아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나죠. 호텔에 값비싼 식당, 명품샵을 두어도 여기서 호텔 자체의 수익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즉 호텔의 객실료가 올라가야 수익이 높아진다는 건데, 호텔 주변의 카페, 식당, 문화유산이 연결돼 다양한 관광 코스가 될 때 객실의 가치도 높아집니다. 동네가 침체되어 있으면 마을 호텔 자체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변에 협력할 수 있는 가게들과 함께 사업을 이끌어가다 보면 마을도 활성화 될 수 있죠. 소규모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모던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를 운영중인 퍼즐랩 권오상 대표 (봉황재 제공)

이들은 단순히 마을 호텔 프로젝트를 통해 마을을 활성화 시킬 뿐 아니라 코워킹 스페이스, 지역 사회활성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새로운 테마형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있다. 인문학 강좌와 북클럽처럼 지역민들이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머무르는 콘텐츠 사업으로 연결할 기회를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마을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마을을 활성화 하고 싶어요. 소도시를 찾는 청년들에게는 저희의 경험을 공유해 창업할 수 있도록 멘토링도 해주고, 지역민들에게 필요한 편의시설을 만들어주면 마을에 머무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늘어나겠죠. 그렇게 마을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꾸려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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