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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골목탐방(6)] 보통사람들의 행복한 에너지가 가득한 망원동

망원동을 사랑해 망원동 주민이 되어버린 <주렁주렁 스튜디오> 주수현 대표

◇비로컬 윤준식 편집장(이하 ‘윤’): 좌충우돌 골목탐방, 오늘은 망원동 이야기를 전해주실 <주렁주렁 스튜디오> 주수현 대표님 모셨습니다. 주수현 대표님은 저희 방송 5회차에 출연하셨어요. 저희가 로컬크리에이터들이 어떻게 양성되나 이야기를 하면서 서울시가 하는 <넥스트로컬> 참여 팀 중 한 분으로 모셨었죠. 서울과 부산과 영월을 오가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었는데 영월에서 하시는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시는지요?

◆주렁주렁 스튜디오 주수현 대표(이하 ‘주’): 네. 영월에서 영월 문화원과 지명 유례 AR도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올해 10월에 출판됩니다. 영월이 끝나면 다른 지역도 열심히 발굴하려고 섭외 중에 있습니다.

◇윤: 홈페이지를 보니까 설화탐정이라는 표현을 쓰고 계시더라고요.

◆주: 네. 설화탐정이 이름도둑이 훔쳐간 지명들을 하나 둘씩 모아 출판한 책 1호가 영월 책이 되는 거죠. 제가 항상 지명이나 이야기 찾는 것에 갈증이 있었는데 누가 지우지 않아도 자꾸 지워지는 게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지우는 캐릭터인 이름 도둑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서 탄생하게 됐습니다.

◇윤: 네. 설화탐정으로서 이야기들이 굉장히 무궁무진할 것 같습니다. 지금 망원동에 살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망원동 주택가 골목길 (주수현 제공)

◆주: 제가 한 2년 전에 사업 초창기에 회사 오픈하고 한참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돈을 벌어야 해서 주말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평일 낮에는 회사 일을 하고 그랬는데요. 그 때 편의점 알바를 한 곳이 망원동이에요. 저는 마포구청역에 살았었는데 알바를 하면서 망원동을 오가다가 편의점 뒤편으로 이사를 오게 됐는데요. 집 계약할 때 보니 집주인이 제가 편의점 알바 할 때 단골이었던 아주머니이신 거예요.

그래서 리모델링도 새로 해주시고 월세도 깎아주셨어요. 덕분에 좋은 집에서 좋은 라이프를 살고 있습니다. 또 사업이 바빠지면서 알바는 그만 두게 됐는데, 지금도 점장님이 만약 빵꾸 나면 저한테 먼저 연락 주시는데 제가 힘들 때 먹여주고 돈 주신 분이라 바쁜 일이 있어도 다 제치고 가서 도와드리고 있어요.

◇윤: 기묘한 인연이네요. 망원동이 좀 평생 남다르게 여겨질 것 같아요.

◆주: 제가 부산에서 와서 서울에서 생활한 지 거의 8년 정도 됐는데, 처음으로 고향같이 행복하고 즐겁고 안락하다고 느낀 곳이 망원동이에요. 그만큼 너무 애정하는 동네인데요. 사실 처음에 마포구청 살면서 망원동 놀러 다닐 때는 망원동이 가식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되게 힙한 척 하는 가게가 너무 많아서 좀 담백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고 싫어했는데 막상 살다 보니 굉장히 건강한 주민생활상이 있고요.

타 지역에서 온 청년들이 유입이 돼서 엄청 유니크한 문화를 만들어내더라고요. 그래서 골목 다니다 보면 유리 공예나 도자기 공예 하시는 젊은 분들도 있고 되게 다양한 직업의 장르가 골목골목에 많이 배치 돼 있어요. 또 망원동에 망원시장이 되게 유명하잖아요. 망원시장 물가가 진짜 너무너무 싸요. 그래서 살기도 편하고요.

망원동 플리마켓 (마포구청 제공)

그 망원동 가는 길에 빌라촌이 이렇게 있는데 길거리에서 아주머니들이 벼룩시장처럼 집에서 가지고 내려온 물건들을 막 팔아요. 그게 되게 좌충우돌 하면서 발랄한 골목이라는 인상을 받았고요. 망원동은 골목이 엄청 좁아요. 그래서 미로처럼 얽혀있는데 그 좁은 길거리에 꽃이랑 식물을 좌르르 펼쳐놓고 팔거든요. 거기가 전집 바로 옆인데 전 냄새도 좋고 햇살도 잘 들어와서 동네 아주머니들의 아방궁이에요. 근데 꽃을 파는 아저씨가 꽃 이름을 물어보면 하나도 몰라요. 물을 얼마나 줘야 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좀 시들면 주라고 해요. 아저씨가 장사 색도 많이 안 비치고 소담하니까 거기 가면 망원동 사람 다 만날 수 있거든요. 엄청 저렴해서 저도 거기서 식물을 엄청 많이 사요.

또 한 번은 어떤 아저씨가 코로나 때문에 졸업식이 취소되고 그래서 빨리 팔아야하는 프리지아를 리어카에 엄청 싣고 오신 거예요. 사람들이 막 모여서 꽃을 사는데 갑자기 “야 떴다 떴어.” 그러더니 리어카에 꽃을 싣고 엄청 달리시는 거예요. 제가 꽃을 사려던 참이어서 꽃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아저씨 돈이요!” 그러니까 “그냥 가져!” 이려면서 떠나시더라고요. 그래서 골목이 엄청 역동적이라는 걸 느꼈어요. 망원동은 거의 날 것이에요. 또 엄청 순수의 결정체인 아저씨가 있어요. 그분은 막걸리 리어카를 끌고 다니시는데 아세요?

◇윤: 아, 알아요. 그분 홍대까지 와요.

◆주: 그래요? 그런데 그분 웃는 모습 보셨어요?

◇윤: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막걸리 사요. 그분 막걸리는 마시려고 사는 게 아니라 굿즈 개념으로 산다니까요.

◆주: 최고죠? 망원동에서 엄청 사랑받아요. 그분의 웃음이나 기운을 사려고 하는 것 같아요. 망원동은 누구의 눈치를 보는 곳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중국에서 6개월 정도 교환학생으로 살았는데요.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중국 진짜 좋아해요. 중국의 골목을 돌아 다녀보면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70~80년대 모습이지 않을까 하거든요. 사실 중국이 가 보면 우리보다 잘 살거든요. 그런데 그 골목골목 문화만큼은 아직 그 갭을 따라가지 못해서 소위 낙후됐다고 하는데 제가 그 골목을 한 달간 배낭여행을 했었어요. 그 때 부산 골목이랑 많이 닮았다고 느꼈거든요. 그리고 망원동에 와서는 망원동도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제가 편의점 알바 할 때 어떤 아저씨가 어깨에 진짜 앵무새 두 마리를 이렇게 달고 오시는 거예요. 제가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앵무새가 “안녕.” 하고 제가 “안녕히 가세요.” 하니까 앵무새가 “어, 안녕.” 이러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한강에 강아지랑 산책을 갔는데 그 아저씨가 계시는 거예요. 어깨에도 앵무새가 있지만, 자전거 여기저기에 앵무새를 달고 다니시거든요. 사람들이 사진 찍자고 하면 찍어주고 그런데, 너무 사랑스러운 모습이에요. 서울은 좀 인색한 느낌이 있는데 동네가 서울답지 않게 재미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피자스쿨> 가게가 있는데 그 앞에 벤치가 있거든요. 거기는 테이크아웃점이니까 피자 기다리는 손님 앉으라고 둔 거예요. 그런데 저는 피자 사는 젊은층이 의자에 앉아있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항상 할머니들이 앉아 계시거든요. 그런데 주인이 한 번도 뭐라고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저는 할머니들이 많아서 많이 기다려야겠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전혀 관계없고 그냥 나란히 앉아만 계시더라고요.

수선집 간판이 달렸지만 문구와 완구, 잡화가 가득한 만물상 (주수현 제공)

또 재미있는 게, 힙한 카페가 하나 있어요. 카페 사장님도 좋으시고 커피 맛도 좋고 감성적인 곳이에요. 그 옆에 엄청 허름하고 낡은 할머니 집이 있는데요. 이 카페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 변기 맞은편에 불투명 문이 있는데 그게 할머니 집이랑 연결이 돼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안에서 움직이시는 게 보이거든요. 할머니도 손님들이 화장실 쓰는 걸 알겠죠? 그래서 할머니가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날 카페에 손님이 많아서 제가 강아지랑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덥지?” 하면서 자기 집 의자를 주시더라고요.

그러더니 제가 민트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는데 뭘 마시고 있는지에 대해 엄청 열심히 물어보세요. 그래서 그걸 보면서 이 커피숍 가게 사장님이랑 옆집 할머니랑 그만큼 끈끈하고 서로 존중했기 때문에 이 할머니가 손님인 저에게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주셨구나 생각했거든요. 결국 이 상인들과 주민들이 굉장히 젠틀하고 서로 존중하기 때문에 여기 놀러오는 손님들이 그 혜택을 다 받지 않나 하는 따뜻한 생각을 했습니다.

◇윤: 네. 저희가 망원동 이야기 계속해 나가고 있는데요. 특이하게도 망리단길 이야기는 안 하게 된 것 같아요.

◆주: 사실 망리단길은 더 이상 로컬이 아니고 메인급이에요. 망리단길에서 가지로 뻗어나간 진짜 작은 골목길이 망원동의 진짜 로컬이거든요. 사실 망원동에 되게 있는 척하고 힙한 척하고 인스타 느낌에 트렌디한 가게들 엄청 많은 것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들 있어요. 많은데 지금 쓸데없는 거품은 다 빠지고 주민들과 잘 화합하면서 진짜 뚝심을 만들어 가는 가게들만 남았어요.

◇윤: 아, 망리단길도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게 일어난 건가요?

◆주: 그렇죠. 거기는 제가 봤을 때는 두 달에 한 번씩 상가가 비어요. 오히려 골목골목에 굉장히 오래 버티고 가치가 있는 가게들이 많아요. 외형적으로만 힙한 게 아니라, 나만 빛나는 게 아니라, 주변 상가나 주민 모두 같이 빛나고 서로 거울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게 진짜 힙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진짜배기 가게들이 많이 남았어요.

망원정의 모습 (마포구청 제공)

◇윤: 망원동은 어떤 면에서는 좀 전통문화랄까요. 전통적인 골목 문화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한 것 같아요.

◆주: 맞아요. 망원동은 오히려 골목에 상가가 하나도 없었고 다 주민들이 살았는데요. 이제 신세대가 거기에 상가를 연 거죠. 그게 묘하게 주거공간과 어우러져서 좀 색다른 매력을 내뿜는 것 같아요. 상가라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손님들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인데 주거는 편해야 하는 공간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상극의 개념인데 지금까지 그 공간들이 잘 어우러지는 거 보면 굉장히 많은 노력들이 있지 않나 싶어요.

◇윤: 어찌 보면 홍대나 합정 쪽이 발전하면서 망원동 쪽이 소외되는 느낌도 있었는데 망리단길이 형성되면서 망원동이 뜨는 골목이 돼 버리고, 1인 청년 가구가 많이 살다 보니 문화 자체가 힙하게 갈 수 있는 여지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힙합의 원천은 원래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의 마음속에 있었다는 것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분간 망원동에서 계속 사실 거죠?

◆주: 네. 저는 정착해서 살고 싶고 회사도 망원동에서 더 키우고 싶을 정도인데요. 그런데 사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지역이 좋고 나쁘고를 우리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게, 명확한 지표가 없다고 생각해요. 마침 내가 마음이 열려 있고 마침 거기 아늑한 공간을 찾았고 나와 맞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을 이어나갔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른 분들도 그 동네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동네에 들어갈 나 자신의 마음의 문이 얼마나 열려있고 그 동네를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됐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망원동이 바라볼 망에 멀 원이더라고요. 망원동이 망원정이라는 정자에서 유래가 됐어요. 망원정이라는 정자가 한강 근처에 있거든요. 성종이 거기 정자에서 한강을 바라보면서 마을이 망원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망원이 멀리 바라본다는 건데, 망원은 멀게 보면 안 보이고 좁게 봐야지 잘 보이는 것 같아요.

망원동은 1인가구 청년세대가 많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주수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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