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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김혁주
  • 로컬맥주
  • 입력 2021.01.31 01:10
  • 수정 2021.02.24 13:58

[로컬맥주(6)] 1부: (양조장 탐방) 부산의 거친 파도와 꼭 닮은 곳 <와일드 웨이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 되기를 꿈꾸는 부산의 <와일드 웨이브>는 사워 와일드 비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를 묵묵하게 개척하고 있는 브루어리입니다. <와일드 웨이브>가 있는 골목 어귀에 들어서면 서부영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부산이 아니라 서부영화 속 텍사스에서 마주칠 것 같은 간판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을 맞이하는 커다란 나무문, 가게 내부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늘어선 오크통, 바닥에 깔린 인조잔디와 나무를 활용한 인테리어로 인해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1부: (양조장 탐방) 부산의 거친 파도와 꼭 닮은 곳, <와일드 웨이브>
2부: 자연의 방식으로 만드는 술 ‘와일드 비어’- 김관열 대표
3부: 기울어진 공장, “무개성에서 개성을 찾아가는 과정 거쳐야”-김관열 대표
4부: 자연 효모와 새콤달콤한 맛의 조화로움

2021년 1월 <비로컬> 특집 주제는 "로컬맥주"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살고 싶은 곳에서 추구하는 로컬크리에이터의 정신은 크래프트비어를 만드는 로컬 브루어리의 크래프트 정신과도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통상 수제맥주, 크래프트비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기존의 의미 속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의미를 찾기 위해 "로컬맥주"라는 주제로 로컬트렌드를 탐사하는 기획입니다.

입구에 걸려있는 오크통. <와일드 웨이브> 로고를 새겼다. (beLocal 윤준식 편집장)

◆거친 파도의 맛, 와일드 비어를 만들다

브루펍 입구로 들어가는 벽면에는 거친 바다를 상징하는 로고가 새겨진 배럴이 붙어있습니다. <와일드 웨이브>라는 이름은 와일드 맥주를 만들겠다는 창업자의 마음과 부산을 상징하는 바다의 거친 파도 이미지가 합쳐진 이름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만든 맥주를 맛보면 강렬한 파도가 떠오릅니다.

<와일드 웨이브>는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과 맥주가 발효되는 브루잉 공간이 한 지붕 두 가족처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맥주가 발효되는 향을 가게 내부에서도 맡을 수 있어 이곳 역시 오감으로 맥주를 즐기기에 부족함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내부 인테리어 역시 나무를 십분 활용해 디자인했습니다. 맥주 탭 앞의 작은 바는 서부영화 속 카우보이들이 맥주를 즐기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합니다.

‘BREWING’이라는 강렬한 빨간색 네온사인이 있는 펍의 옆문은 맥주 양조장과 연결된 문 입니다. 인터뷰를 청해 만난 김관열 대표님께서 직접 양조장을 견학시켜주시며 맥주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양조장 입구에는 초기에 사용했던 장비들을 두었습니다. 300L 규모의 작은 장비로 시작했지만 공간을 점차 확장하면서 커다란 장비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일반 브루어리가 사용하는 장비들로 발효되는 맥주와 오크통에서만 숙성하는 맥주 2가지 종류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 발효조 근처를 지나는데 ‘뽀글뽀글’ 거품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것은 맥주가 살아 숨 쉬는 소리인데요. 맥주가 발효하면서 탱크 안에서 나게 되는 소리입니다. 발효를 할 때 탱크를 꽉 닫아두면, 탱크 압력이 높아지게 됩니다. 내부 압력이 오르면 생명체인 효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어 좋지 않습니다. 적절히 밸브를 조절해 압력을 배출해주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발효조 내부에 벌레가 들어가지 않도록 연결된 호스를 물 속에 담가두어야 합니다.

공간은 탭하우스와 양조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저 문 건너편은 <와일드 웨이브>가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다. (beLocal 윤준식 편집장)

◆시큼한 냄새가 난다고? ‘와일드 비어’ 향기지!

<와일드 웨이브> 숙성 창고 내부로 들어가니 새콤한 향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냄새를 맡는 순간 요구르트에서 풍기는 향? 혹은 와인을 발효시킬 때 나는 향이 느껴졌습니다. 이는 <와일드 웨이브>의 색채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워 맥주가 발효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공간에 감도는 맛있는 시큼한 향 덕분에 입안에 침이 고이고 식욕이 자극되는 걸 참을 수 없었습니다. 시큼한 향이 나는 이유는 바로 ‘와일드 맥주’를 주로 만들고 있어서입니다. ‘와일드 맥주’란 발효 방식에 따라 나뉘는 맥주 종류 중 하나입니다.

맥주는 발효방식에 따라 라거, 에일, 와일드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라거는 저온에서 발효되는 ‘하면 발효’ 방식으로 만들어진 맥주입니다. 반대로 에일은 ‘상면 발효’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이와 달리 ‘와일드 맥주’는 고온 발효 효모와 박테리아를 맥주에 노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독특한 점은 자연적인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친다는 점인데요. 이렇게 전통과 자연이 선물한 맥주는 값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닙니다. 대표적으로 벨기에의 람빅 맥주를 꼽을 수 있습니다. 람빅은 효모와 박테리아를 자연 그대로 활용해 독특한 맛을 자아냅니다.

특히 <와일드 웨이브>에서 만드는 맥주는 ‘사워 맥주’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습니다. ‘사워 (Sour)’, 영어로는 시큼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시큼한 맥주하면 어떤 맛이 연상되시나요? 아마도 편의점에서 만난 ‘레몬맥주’ 맛이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와일드 웨이브>의 ‘사워 맥주’ 맛은 얼음동동 톡 쏘는 동치미를 닮았습니다. 발효된 음식에서 맛볼 수 있는 그런 신맛입니다. 한국인의 입맛에 꼭 맞는다고 할까요?

브루어리 안쪽에 오크통 숙성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beLocal 윤준식 편집장)

◆자연이 만들어내는 마법

그런데 여기까지가 브루어리 탐방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브루어리 안쪽에 비밀의 방(?)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자 수많은 오크통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강렬한 나무향이 공간을 지배했습니다. 보통 위스키, 와인에서 나는 나무 냄새를 일컫는 피트향은 오크통 숙성과정에서 술에 배어들게 되는데요. ‘와일드 맥주’가 발효되는 이 공간에서도 같은 향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숙성된 맥주가 잔으로 따라졌을 때 어떤 향을 풍기게 될지 기대가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와일드 웨이브>는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크통에 맥주를 넣어 숙성하며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짧게는 6개월부터 길게는 4년의 숙성 시간을 거치며 미생물과 효모가 일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오크통에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는지에 따라 맥주 맛의 차이가 난다고 하니까요. 미생물이 당을 먹고 다양한 물질을 배출하는데 그런 과정들에서 맥주의 맛과 향이 완성됩니다.

여기서 사용하는 오크통은 대부분 와인, 위스키를 통해서 한번 사용되었던 통을 재활용합니다. 원래 와인을 발효할 때 살고 있었던 미생물을 다시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크통 내부에 숨겨져 있던 술의 향취를 그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게 모르게 배어있는 미생물과 술의 향취는 발효 중인 맥주에 더욱 새로운 맛을 제공합니다.

이런 양조방식은 보통 유럽쪽에서 만나볼 수 있는 양조방식인데요. 짧게는 300년, 길게는 500년 이상 지속되어온 양조장들은 술이 발효되는 공간에서 하우스이스트, 하우스 박테리아들과 함께 생활해왔습니다. 이 생명체는 맥주가 발효되면서 맛을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럽의 와이너리, 일본의 발효식품공장 모두 마찬가지 입니다. 효모들이 모든 공간에 살아숨쉬기 때문에 장비도 함부로 바꾸지 못합니다. 자칫 잘못 장비를 교체할 경우 교체한 장비에는 하우스 이스트가 살고 있지 않아 만드는 식품의 맛이 바뀌기 때문이죠.

유럽에서는 오래된 오크통에서 맥주를 숙성시킨다. 오래된 오크통에는 그 브루어리에서 만들고자 하는 맛을 내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효모가 살고 있다. (Pixabay)

맥주도 발효음식이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미생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나 이곳은 자연 발효이기 때문에 미생물과 함께 살아 숨쉬는 맥주라는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공간에 작은 변화가 있으면 미생물의 생태도 변화하기에 맥주 맛도 시시각각 변화합니다. 같은 오크통에 숙성한다 해도 오크통마다 살고 있는 미생물의 개체수가 다르면 미묘하게 맛이 변화합니다. 이런 점들은 술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도 재미있는 포인트로 다가옵니다.

오크통으로 맥주를 숙성해 새로운 맛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와일드 웨이브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닙니다. 소규모 브루어리 중에서는 오크통에 맥주를 숙성시키며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버드나무 브루어리같은 경우에도 브루펍 양조장에서 맥주를 오크통에 숙성시켜 새로운 시즈널 메뉴를 개발하고 있죠. 작은 브루어리들 역시 새로운 맛에 도전하면서도 자연이 만들어주는 선물을 맞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와일드 웨이브>역시 미생물이 일으키는 변화를 반가워하며 숨죽여 기다리는 브루어리입니다. 좋은 맥주의 맛이 나올 때까지 얼마나 걸릴 진 모르겠지만, 맛을 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받아들이고, 미생물이 일으킬 변화에 기대감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대표님의 설명과 함께 투어를 진행해보니 자연이 만들어 주는 맛에서 양조장이 원하는 맛이 나올때까지 고집있게 맥주를 만들어내는 크래프트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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