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특집(2)] 재해석되는 로컬 "동네병원의 변신! 비즈니스 클리닉-씨드그라운드"

비즈니스 인큐베이팅 기업 <주식회사 씨드그라운드> 박신혜 대표

beLocal 승인 2020.09.30 00:00 | 최종 수정 2020.10.17 15:51 의견 0

로컬 콘텐츠를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은 크게 2가지였습니다. 우선 특산물이나 명소로 표현되는 로컬 그 자체를 다루는 수준 콘텐츠로, 이는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시도하고 있는 CI나 BI 작업에서 두드러집니다. 다음으로 로컬의 재해석을 통해 공연이나 퍼포먼스, 로컬이 보다 추상적인 의미로 F&B와 굿즈 또는 제품의 형상으로 표현된 콘텐츠들로 로컬크리에이터들의 노력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형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비로컬 9월 특집은 이보다 더 진일보한 로컬 콘텐츠 사례를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집기사는 IT플랫폼과 플랫폼 참여자와의 소통을 통해 생성된 빅데이터를 기반한 로컬 콘텐츠 <진짜-서울> 프로젝트를 다뤘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신혜의원>은 지역의 목적과 수명을 다한 로컬 앵커스토어가 리모델링을 통해 재생되는 정도가 아니라 동시대의 필요와 의미에 맞는 변신과 리브랜딩을 시도하며 내재적 의미의 계승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사례를 보여줍니다.

서울 상도동의 <신혜의원>은 전후 복구에 이어 본격적인 경제 부흥과 더불어 베이비붐 현상이 일어나던 시기에는 의료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던 장소입니다. 40년이 지난 지금은 새로운 혁신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필요로 하는 시대적 필요에 부응해 스타트업의 산실로 변신했습니다. 

특기할만한 것은 <신혜의원>이 건축된 당시의 대한민국 사회는 전형적인 물질주의 사회였고, <신혜의원>은 이촌향도 현상과 인구급증 등 당시 시대가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서비스인 '의료제공'이라는 소셜미션을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같은 장소에 세워진 <씨드그라운드>는 노후화된 공간의 재생이라는 가치에만 머물지 않고 있습니다. <신혜의원>의 내재적 의미를 재해석하고 탈물질주와 뉴노멀 전환되고 있는 현 시기의 업자들에게 인큐베이팅가 브랜드컨설팅을 제공해 창업의 성공을 돕는다는 소셜미션으로 재탄행했습니다.

기호학의 개념에 빗대 관찰해 본다면, 기존의 재해석 방식이 로컬의 기표(記標)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새롭게 등장하는 로컬크리에이터들은 기의(記意)의 재해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씨드그라운드> 박신혜 대표  (beLocal)

▶<씨드그라운드> 사무실을 찾아오니 <신혜의원>이라는 오래된 병원 건물이다. 병원 이름이랑 대표님 이름이 서로 같은데, 어떤 사연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씨드그라운드 박신혜 대표: 이곳 상도동은 저희 가족이 증조 할아버지 때부터 4대를 이어오던 곳이고 할아버지 사택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60년대 말부터 이곳에서 신혜의원을 시작하셨다. 믿을 ‘신(信)’자에 은혜 ‘혜(惠)’자를 써서 믿음과 은혜라는 의미를 담으셨다.

할아버지는 본인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기업가 정신이 있으셨던 것 같다. 사택을 허물고 병원을 지어 1층은 진료실, 2층은 입원실, 3층은 사택 구조로 만드신 거다. 24시간 환자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셨다. 

이후 내가 태어났을 때 나의 부모님에게 “뜻도 예쁘고 의미도 좋고 하니 이 이름을 쓰면 어떻겠냐” 상의하셔서 내 이름이 ‘신혜’가 된 거다. 여기를 사무실로 쓰게 된 건, 뭐랄까 ‘회귀본능(*回歸本能; 동물, 특히 어류 따위가 태어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성장한 뒤, 산란을 위하여 태어난 곳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습성)이랄까? 내가 다시 돌아올 곳이 이미 정해져 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나를 찾아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도역 2번출구에서 걸어오다 상도동성당 맞은편을 지날 때 즈음 특이한 양식의 저택같은 건물을 마주치게 된다. 벽면에 <씨드그라운드> 간판이 붙어있다.  (beLocal)

 

골목길로 접어들면 건물 입구가 등장한다. <신혜의원>이라는 오래된 병원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beLocal)

 

건물 완공 당시 만들어진 머릿돌 위에 붙은 현판에는 <신혜의원>의 정신이 <씨드그라운드>로 이어졌음을 알리고 있다.  (beLocal) 


▶’신혜의원‘은 언제까지 병원으로서 운영이 된 건가?

☞씨드그라운드 박신혜 대표: 2003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의사이셨던 어머니께서 병원을 운영하기로 결심하셨다. 기존에 하시던 다른 병원을 정리하시고 <신혜의원>으로 오셨다. 어머니는 소아과 의사이셨기에 병원에 소아과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어머니는 병원만 이어받으신 게 아니라 할아버지의 정신도 이어받으셨다. 할아버지께서 의료 봉사를 다니실 때 동행하시곤 했다. 그렇게 <신혜의원>은 15년 정도 더 운영되었다. 그러다 어머니께서도 은퇴를 하는 시기가 왔고 그때를 정점으로 병원도 운영을 종료하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 빈 공간으로 남겨둔 채 고민을 계속하던 중, 나 스스로 할아버지와 가족들에 대한 기억들이 누군가에 의해 다 지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이곳에서 <씨드그라운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진찰실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채 업무공간을 조성했다.  (beLocal)

 

침상 아래의 작은 계단이 이곳에서 소아과 진료도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beLocal)

 

대기공간에도 병원의 시설물과 기물이 비치되어 미적요소와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beLocal)

▶이야기를 듣고보니 <씨드그라운드>는 <신혜의원>의 기록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병원이 있었던 건물이지만 꼭 사람을 병을 고치는 일이 계속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씨드그라운드>가 하고 있는 ‘스타트업 클리닉’이 기존 병원이 하던 일의 재해석이라 생각된다.

☞씨드그라운드 박신혜 대표: 스스로 그런 생각을 정립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할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의 남은 인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신혜의원>을 리모델링하는 2년간의 생각으로 정리됐다. 

특히 브랜드 전공자로서 창업을 한 대표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했다. 브랜드의 속성은 인간의 속성과 굉장히 유사하다. 대표의 모습이 회사의 브랜드가 되는 이유다. 대표자 본인이 왜 이 일을 하는지 의미 부여를 하려고 굉장히 노력한다. 그래서 대표자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이룰 만큼 이뤄도 허전한 부분이 있고, 못 이루면 못 이룬 만큼의 허전함이 있다”고 말해 온다. 

나의 어머니께서도 늘 “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에는 아파서 오는 환자도 있지만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다. 약 처방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신다는 거였다. 이걸 메타포로 적용했다. 창업가들이 환자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다.

대표들도 쉴 공간이 필요하고,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그런 부분을 정리해서 전달해주는 링크 역할이 내 역할인 것 같다. 창업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구성원들에게 잘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어받은 정신을 내가 가진 달란트를 이용해서 풀어낸다면 그게 나다운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틀에 박힌 교육이 아니라 본질을 건드려 줄 수 있는 인사이트를 전달한다면 대표자들도 교육이 힐링이 되고 사업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스피릿을 <신혜의원>에서 가져갔으면 했다. 그래서 그런 의미를 살리기 위해 병원의 모습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박신혜 대표가 스타트업을 위한 비대면 교육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출처: 씨드그라운드 제공)

 

스타트업 종사자들을 위한 북살롱 프로그램도 운영중이다.  (출처: <씨드그라운드> 페이스북)

▶<신혜의원>은 건축된 당시부터 지금까지 쭉 소셜미션을 수행해왔고, 시대의 필요에 따라 소셜미션이 설정되는 유니버설한 공간이 아닐까?

☞씨드그라운드 박신혜 대표: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동안 남긴 기록들을 보니까 사회혁신가이자 철학가, 의사이자 선교사로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사셨다. 60대 후반에는 칠레로 가셔서 기독병원을 세우고 약 2년을 현지에서 근무하셨다. 라틴어도 배우신 기록도 있다. 노년의 나이에 낯선 일을 하기 쉽지 않은데 모험을 많이 하신 것 같다. 

활동하시던 당시 일기나 기록에 “나를 위함이 아니라 소명이다” 이런 말씀을 적어두셨다. 칠레에 세우신 병원이 어떻게 됐나 찾아보니 아직도 그 지역의 의과대학으로 사용되고 있더라. 지역 주민들이 치료받도록 하나의 씨앗을 뿌린 것이지만 그걸 통해서 많은 열매를 맺은 거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히 그걸 어떻게 따라갈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사실 나는 이 공간에서 자란 사람이라 여기가 너무 익숙하다. 그래서 <신혜의원>의 뿌리, 신념 등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이런 정신이 나를 다리로 해서 다음 세대 누군가에게로 이어진다면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

[신혜의원 박병원 원장 관련 기사]

식지 않는 의료선교 열정
http://www.kporta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9

<신혜의원> 설립자 향산 박병원 원장의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기념사진을 통해 병원에서 영화가 촬영된 적도 있었음을 추억할 수 있다.  (beLocal)   

 

1, 2대 병원장 박병원, 황향옥 원장의 명패가 기록들이 진료실 책상 위에 전시되어 있다.  (beLocal)

 

알람시계는 근면성실했던 박병원 원장의 일상을 보여준다. 007가방은 왕진과 출장, 여행시 박병원 원장이 지참했던 소지품이다.  (beLocal) 

▶회사 이름이 왜 <씨드그라운드>일까 궁금했는데, 할아버지의 의료 봉사 이야기를 들으니 비즈니스의 ‘씨앗이 만들어지는 장소’라는 의미인 것 같다.

☞씨드그라운드 박신혜 대표: 그간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일도 했지만, 이미 잘 성장해 투자를 많이 받은 회사를 육성해 본 경험은 거의 없다. 엑셀러레이터에게 투자 받기 전 초기기업들을 많이 만났고, 대부분 절박해서 온 기업들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분들이 씨앗인 것 같다. <씨드그라운드>가 토양이 되어 드리고 싶다. 여기에는 나중에는 엔젤투자자로서 소셜벤처들에게 씨드투자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는 의미도 있다. ‘그라운드’의 뜻을 봤을 때 이 땅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곳 입주 공간에 들어오면 정말 잘 돼서 나갈 수 있도록 창업자들이 심어질 수 있게 해야겠는 생각을 회사명에 담았다.

▶<씨드그라운드>를 통해 어떤 프로그램들을 해 나갈 예정인가?

☞씨드그라운드 박신혜 대표: 일단은 브랜드 세팅을 돕는다. 디자인 측면과 전략적 측면 두 가지 영역 모두가 가능하다. 특히 정부 산하 기관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기업의 초기모델 세팅을 돕고 있다. 화장품, 생활용품, 헬스케어 분야 브랜드들이 전문분야고, 강의도 하고 있다. 

강의에는 내가 진행했던 사례들을 많이 전달하는 데다, 강의 분량이 30분이라면 생각하는 시간 10분을 꼭 넣어 참석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이 지점이 나의 강의 콘텐츠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또 기업 대표자들이 <신혜의원>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어 해 콜라보 형태의 강의를 열기도 한다. 

교육과정을 통해 대표자들을 지켜보면 정말 뜻이 굳센 사람은 태도가 다르다. 6개월 정도 지켜보고 엑셀러레이터들에게 연계하거나 미팅을 주선한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엑셀러레이터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도 고민이기 때문이다.

작은 기업이긴 하지만 자체적으로 CSV도 노력하고 있다. 4월 5일 식목일에는 <씨드그라운드>에서 만든 씨앗연필을 지역에 계신 분들에게 나눠드리는 행사를 했고, 5월 14일에는 스승의날을 기념해 "배움을 나눔으로"라는 기부행사도 했다. 문화의 날, 체육의 날과 같은 특정한 날과 연관해서 계속 해보려고 한다.

<로컬라이즈 군산>에서 강의중인 박신혜 대표  (출처: <씨드그라운드> 페이스북)

 

<씨드그라운드>에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박신혜 대표  (씨드그라운드 제공)

▶1차적으로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브랜딩을 돕고, 스타트업이 성숙하면 2차적으로 엑셀러레이터나 엔젤 투자자를 연결해 자금 조달을 통해 회사가 본격적인 스케일업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는 점에서 특수한 형태의 ‘컴퍼니빌더’처럼 보여진다.

☞씨드그라운드 박신혜 대표: <씨드그라운드>는 코러닝(Co-Learning), 코워킹(Co-Working), 코그로잉(Co-Growing)의 세 분야로 이루어진다. 교육과 워크샵은 ‘코러닝’ 부분이다. ‘코워킹’을 위한 디자인랩이 따로 있고, 서로 다른 분야의 기업들끼리 콜라보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있다. 

‘코그로잉’은 커뮤니티다. 뜻이 맞는 회사 대표들과 앙트레프레너십 살롱을 운영할 계획인데 “과연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우리가 정의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다. 직접 엔젤투자를 하거나 투자를 연계해주는 부분도 ‘코그로잉’ 안에 들어 있다. 우리는 병원 메타포를 가져와 강의를 할 때는 ‘문진한다’, 담당하시는 분들을 ‘주치의’, 관련 자료들도 ‘기업3팀 문진차트’, ‘브랜드 문진차트’ 이렇게 부른다.

심지어 <씨드그라운드> 사무실이 예전에 아이들이 태어난 분만실 겸 수술실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인큐베이팅의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브랜드 문진 하고나면 다음은 분만실입니다.” 이렇게 설명드리면 다들 재미있어 한다. 이런 식으로 <신혜의원> 하드웨어와 <씨드그라운드>의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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